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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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은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욕망, 그 인간 중에서도 하층계급의 이야기하기의 욕망에 대한 영화이다. 쉽게 알 수 있듯 <춘향전>이라는 판소리극을 베이스로 삼고 그걸 거꾸로 뒤집어 변주시키며 조선시대 중기 하층계급이 품고 있던 이야기하기의 욕망에 대해 인문학적인 통찰을 섞어 일종의 통속극을 선보이고 있다. 대략 17~18세기를 경과하며 나타난 조선시대 계급 갈등의 세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는 다름아닌 '이야기'를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춘향전> 뿐만 아니라 <홍길동전>이나 <심청전>, <흥부전>, 그리고 무수한 민담들에서 우리는 그 당시 계급간 갈등의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방자전>은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한 김대우 감독이 <춘향전>이라는 원-소스를 통해 어떻게 욕망의 층위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여기에 확실히 상업적인 고려들도 가미되어 어느 정도 아쉬운 지점도 생기지만 그게 감독의 의도를 누그러뜨리거나 희석시키진 않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문제화시키고 싶은 건 영화의 종반부에 다다르면서 저질러지는 방자의 두 가지 '고백'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놀랍게도---그러니까, 조선시대 인물들답지 않게도) 욕망 자체에 대단히 솔직한 주체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쉽게 그 고백을 의심하지 못한다. 확실히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건 확실히 거짓말이라고 밀어붙이고 싶다. 그러니까, 욕망 자체에 솔직하지 못한 거짓-상연이라고 말이다.

그 중 하나는 모든 사태가 종결된 이후에 춘향(조여정 분)이 방자(김주혁 분)이 갇혀있는 옥에 면회왔을때 방자가 하는 말이다. 춘향이 다가와서 처연한 표정으로 방자에게 말한다. "나 원망하지?"(춘향) - "원망할게 뭐 있어."(방자) -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다 알려줬는데, 미리 계획을 다 알려줬는데 바보처럼."(춘향)

그러면서 과거에 있었던 몇가지 단서들의 몽타주가 지나간다. 그러니까 사건들의 모든 과정은 사실 몽룡(류승범 분)과 춘향의 계약에 따라 이루어진 짜고치기였던 것이다. 몽룡은 '미담'을 만들어 조정에 이름을 떨치는 계기가 되니 출세할 수 있어 좋고, 춘향은 그를 통해 변사또로부터 풀려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의 대가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방자가 대뜸 말하길, "돕고 싶어서. 어차피 짜고 하는 거면, 잘 되어야 하잖아. 지금까지 너한테 뭐 하나 해준게 없는데 그게 항상 미안하거든. 그리고 도련님을 믿을 수가 없었어. (춘향이 옥에서 나가려 하자) 잠깐만. 너한테, 이 얘길 못해줬어. 나는 너 사랑한다. 상놈으로 태어나서 자격은 없지만 너 사랑한다."

연출자는 이 '고백'아닌 '고백'이 논리적 개연성을 충분히 갖는다고 여겼던 것 같다.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반면 이것이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초월한 사랑에 대한 하층계급 남성 방자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면 확실히 이 '고백'은 이전까지 방자가 보여준 다른 모든 행동들과 합치되지 못한다. 애초부터 방자에겐 '미담'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미담'의 극적 완성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건 전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감독 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알아채지 못했던 영화 속 문제적 인물 방자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가 '미담'(제조되어 조정에 전달되는 거짓-미담) 경계 밖 '또 다른 미담'(실제로 있었던 진실)에서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기를 욕망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요컨대 이 후자의 '또 다른 미담'은 <방자전>이라는 영화 자체이다. 그러니까 방자가 이 첫번째 거짓말을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영화 밖으로 튀어나와버리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지점이다.

두번째 거짓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행된다. 우선은 이 마지막 장면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초반부로 돌아가자. 한성에서 성공한 장사치(영화에서는 '조폭'두목 인것처럼 묘사한다.)가 된 방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고 싶어 색안경(공형진 분)을 초빙한다. 아마도 색안경은 <춘향전>을 쓰게 될 소설가인 모양이다.(훗날 우리는 <춘향전>을 작가미상으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액자 구성으로 방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영화 종반부가 되면 다시 액자에서 빠져나와 방자와 색안경이 앉아있다. 방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 방자는 물에 빠진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고 그녀를 업고서 전국팔도를 도망다녔다고 말한다. 그러자 색안경이 말하기를, "참 가슴 아픈 얘기요. 내가 꼭 잘 써보겠소. 하인의 이 억울한 사랑 얘기를 말이오." "아녜요, 아녜요. 그런 식으로 말구요. (중략) 아름답게 써주셔야지요." 그러면서 방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원래 이야기를 지어내어 말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이야기 모두를 뒤집어버리고, 계급 질서 안에서 열녀다운 사랑을 지키다가 결국 다시 몽룡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산다는 춘향의 거짓-이야기를 말이다. "아니,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은, 굳이 왜…?" "못 이룬거니까. 해주고 싶어서요. 아 그리고 제목은… <춘향전> 좋네요, <춘향전>."

이 요청이, 소설가를 향한 방자의 이 요청이 방자의 두번째 거짓말이다. 이것 역시 방자가 영화의 경계 밖으로 나와 <방자전>이라는 영화를 보는 관객을 향해 던지는 거짓말이다. 왜 방자는 이렇게 갑자기 영화의 경계 밖으로 나와서 모두를 우롱하는가. 감독에 대한 인터뷰에서 그 우롱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는 춘향이 죽을때 방자도 죽게 되는 비극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좀 밝은 결말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끝내버리면서 영화가 갖고 있던 여러 존재 이유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유가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볼땐, 확실히 실패다. 이렇게 까지 말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감독 자신이 한겨레신문 6월 13일자 인터뷰에서 "눈으로는 엔터테이너의 전복을 즐기고 머리로는 춘향전과 연계하면서 두시간 동안 인문학적인 유희를 즐겨보시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관객으로서의 응답이다. '인문학'이 우스꽝스러운 핑계거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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