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토론하는 마음: 갈매기편』

지난 11일, 학교 연극원 상자무대에서 봤다. 학교에 복학신청도 하고, 도서관에서 가서 책도 읽으려고 갔는데 마침 연극원 지하 상자무대에서 하길래, 혼자 가서 봤다. 2007년에는 한 번도 연극을 보지 않아서 처음 가는 것이었는데 상자무대도 참 괜찮은 극장이었다. 잘 만든 것 같다. 객석은 거의 꽉 차 있었다. 아마도 거의 연극원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일단 "갈매기편"이라니까 역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각색한 것일꺼라고 짐작은 했다. 그래서 땡기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제목이 더 끌렸다. "토론하는 마음"이라니. 토론하는 마음이란게 뭘까? 내게 토론하는 마음이란 항상 억울하고, 슬프며, 안타깝고, 아쉽고, 자학하게 되는 마음인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말해서는 안될 것 같은 지점을 확인하게 되고 대충 마무리할 지점에서 멈추고 화해의 제스츄어를 적당하게 제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대학시절 나는 토론과 논쟁의 바운더리에서 움직였더랬다.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자율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과, 그리고 사민주의자들과 논쟁하는 자리는 항상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그나마 학습하고 책을 읽으려 하는 욕심을 품었던 것도 그 토론의 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우위를 점해야만 정치의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여졌으니 말이다. 그땐 토론을 너무 못했다. 내가 지닌 무기도 너무 부족했고, 너무 딱딱하기도 했다. 또 충분히 정신분석적이지 못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연극판의 어떤 풍경을 기묘하게 극화시킨 작품이다. 체홉의 <갈매기>를 어떻게 각색해서 대학로 무대위에 올리는가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논쟁의 촛점 중 하나이고, 또 이걸 어떻게 상연하고 어떻게 끌어가는가가 갈등의 중심에 있다. 그 가운데에 연출 입봉자인 '정택'(아마 극중이름은 그게 아닐텐데 배우 이름이 오정택씨이니…)은 후배 '민경'을 여주인공으로 데려와야만 했다. 그녀에게 큰 잘못을 했는데 그걸 '책임'질 용기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지적 허영을 내세워 좌파적인 언설을 내뿜지만 좌파답지 않게 여성 관계에서 폭력적이다. 또한 권위적이기도 하다. 이 알량한 연극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 모여든 몇 안되는 관계들 안에서 '연출자'로서의 자기 권위를 내세우려든다. 이는 남자주인공으로 출연예정인 '두희'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는 뭇여성 꼬시고다니는 전형적인 마초타입의 남성이다. 이렇게 '민경'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관계망이 형성되어있고, 극작가인 '아람'이 있다. 그녀는 스물다섯이고 이 작품이 첫 작품이지만 두 남성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느낀다. 자신이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침해받는 권리의 지점에서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적이 누구인지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드러낼 줄도 안다. 하지만 우선은 꾸욱 참으며 폭력들을 감내해야하는 형편에 위치해있는 피억압적 위치의 초년 작가이다. 끝으로 제작자인 '슬기'와 '정택'의 애인인 '미홍'이 있다. 슬기는 예술 운운하며 자기만의 쌈마이적 취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이중적이면서도 다소 얄팍한 지식을 지닌 제작자이고, 뻔뻔하기도 하다. 미홍은 대학로판에서 유행을 탄 뮤지컬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가도에 오른 '뮤지컬 배우'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갈등이 유발되는데 미홍이 정택의 연인이며 또 '미경'이 정택으로 하여금 어떤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녀에게는 미경이 뻔뻔하고 부족한 아직 뭣도 모르는 어린 후배일 따름이다.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 이후에서 두희와 미경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지점은 참 재미있다. 어떤 면에서 연극판의 씁쓸한 현실을 풍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고매한 자세로 거부하지는 않은 채 쉽게 받아들여 쉽게 풀어내는 융통성도 보여진다. 그런 태도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지점을 잘 활용하는 것 같고 또 극적 파토스로서도 잘 활용한다. 또 그렇게 노래가 연달아서 흘러나오는 판이 열릴때 확실히 전형적인 뮤지컬 조명기법으로서 노래하는 배우에게 스팟을 주고 다른 지점은 다 어둡게 깔고 배우들을 멈추게 연출하는 것도 전형적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것조차 신선하게 느껴지고 불순하거나 타협적이지도 않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걸까. 이 작품이 '토론'하는 '마음'에 대해 토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토론장'이라는 폭력적이며 남성우위적 공간에서의 여성의 감정, 느낌, 일상적인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형적인 것을 강박적으로 탈피하려고 하는데에서 느껴지는 어떤 예술적인 허식이 불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 확실히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맥락 안에서는 그런 욕심 같은 것 모두 허영이다.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닌가. 모두들 '감정'에 대해서 말하면서, '몰감정'화되어있고, 연극판이라는 공간도 그렇다. 돈에 의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허영들에 의해 창작의 여지들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확실히 어떤 숨겨진 감정들을 억압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몇명의 연기과 배우분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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