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작은새』

어제 학교 상자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볼 수 있었는데 보지 못해서 아쉽긴하지만. <방해자들> 색보정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방해자들>은 마지막 두 씬을 해 기울어서 마구잡이로 찍은 것 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공부가 된 습작 경험이었다.
아무튼 대학로에서 일주일만에 또 연극 공연을 봤다. 선돌극장에서 기획공연으로 상연 중인 <작은 새>라는 작품인데, 미국의 극작가이자 배우로 평생 활동했던 레오너드 멜피 Leonard Melfi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각색한 작품이다. 1965년 뉴욕에서 첫 공연을 가진 후 오랫동안 상연되었다고 한다. 오늘 본 건 연출가 최성신씨가 각색하고 연출한 번안 작품인데, 나름의 색깔을 갖고 각색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코믹스러운 상황 연출이나 남자 배우의 춤이 무지 재미있었다. 간만에 폭소했다. 극장 안에 열아홉명 정도의 관객만 있어서 조금 텅 빈 느낌이었지만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이 작품도 지난 주에 본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처럼 2인극이다. 한 명의 여자와 남자가 만나고, 머뭇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설정인데, 전체적인 플롯으로는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한 것 같았다. 마지막 결말이 또렷하지 않게 끝난 점은 관객을 쓸데없이 당황시키지 않으려는 고려처럼 느껴졌다. 나쁘지 않았다.
또 무대 구성 자체도 정말 잘 짜여있다. 무대 가운데에 약간 단이 높은 쇠로 된 판이 있고, 이 공간 가외로 디귿자로 길이 놓여져 있다. 처음에 가운데 무대는 두 남녀가 일하는 '카페'였다가, 나중에는 시를 쓰고 또 카페에서 카운터 일을 보는 남자의 집이 된다. 그리고 가외의 디귿자 길은 2월13일인 그 겨울밤 도시의 쓸쓸하고 추운 거리가 되는데,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눔에 있어서 어떤 통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남녀가 그 디귿자 길을 걸으며 서로에게 접근해나간다는 구성 자체가 공간적으로나 극적으로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앙 무대는 자유자제로 중간 텀에 가구를 재배치해서 다른 공간이 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두 번 모두 이상하지 않았다.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연극 공연의 무대 미술적인 장치들을 살피는 게 참 흥미롭다.
조명도 최근에 본 연극 작품들의 조명 연출 중 가장 섬세하고 훌륭했다. 조명의 변주가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또 두 남녀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각각 다른 색을 갖고서 비출 때 정서를 잘 전달하고 있었다. 나중에 밤의 길을 걷고 남자 집앞에 다다르면 갑자기 조명에 의해서 문이 하나 생기는데, 순전히 조명만으로 만들어지는 문이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런 걸 처음보는 건 아니지만, 개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기술적으로도 완벽했다. 높은 수준의 조명 연출을 본 것 같았다. 클라이막스 지점에 다다르면 갑자기 여자의 가방에서 식칼이 나오면서 극적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르게 된다. 이때의 조명연출도 가히 인상적이었다. 여자의 윤곽에 딱 맞추어서 잘 살려주고, 칼이나 여자의 얼굴에도 빛이 적절하게 들어갔다.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특히 여자역로 열연한 '김유리'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캐릭터가 지닌 산만함과 정서불안이 완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오히려 연기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대사가 너무너무 많아서 정말 힘들 것 같았고, 공연 한 번 하면 온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연극 배우들은 대단하다! 정서불안과 다중인격적 면모를 지닌 그 여자 캐릭터가 인격적인 혼동이 생기는 극적인 지점에서, 악센트가 좀 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연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오늘 갔던 선돌극장은 처음 간 곳이었는데 다른 극장들보다 찾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혜화동 한가운데 극장들에서 하는 작품들보다 훌륭하게 느껴졌다. 관객은 많지 않은 게 아마도, 대학로 중심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도리어 이런 외지고 덜 주목받는 곳에서 남다른 것이 나올 가능성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