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쿠스트리챠 『집시의 시간』

에밀 쿠스트리챠 『집시의 시간』

「집시의 시간」Dom Za Vesanje
에밀 쿠스트리챠 감독
데버 더모빅-페르한 출연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던 차였다. 3주만에 혼자 깁스를 풀고 시네마테크의친구들 영화제가 계속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극장에 도착했고, <집시의 시간>과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라는 영화 두 편의 티켓을 한 장씩 샀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1시간이 넘게 남아서, 로비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매진이었다. 금요일 낮의 시네마테크 상영영화가 매진인 이유는 모두가 이 영화 <집시의 시간>의 힘 때문일 것이다. 당시 유고 출신의 감독으로서 헐리우드의 자본력으로 '유고 영화'를 만든 에밀 쿠스트리차는 이 영화로 인해 세계적인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집시족의 삶을 드라마틱하고 리얼하게 담은 이 영화는 만들어진지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열혈팬들이 있을만큼 수작이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땐 극장에서 본 것도 아니었고, 좀 오래전이어서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다.

실제 집시들의 삶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집시들의 삶이 그 것 자체로 다가오는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판타지적인 이미지와 인물들의 대사, 집시 음악… 이런 것들이 영화의 리얼리즘적인 요소를 몽환적으로 만든다. 또 때때로 인물들의 꿈이나 상상들이 영화 안에서 펼쳐질때면, 황홀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이미지는 또 어떤가. 필름 상영인지 더더욱 그 색의 질감이 느껴졌다. 거칠지만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과잉되지 않고 리얼하다. 그리고 집시, 소외된 자들의 삶의 이야기어서 그런지, 그래서 더 슬프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꾸밈없는 그들의 삶, 판타지… 이런 것이 정말 삶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이 정말 이 영화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집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에밀 쿠스트리차가 미국에서 만든 영화 「아리조나 드림」의 첫번째 시퀀스에서 나오는 에스키모의 그것과 닮아있달까. 게다가 <아빠는 출장중>에서 소년들이 불렀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의 집시 음악은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

매번 동경의 대상이 바뀌긴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계속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가 좋다. 특히 <아빠는 출장중>과 <집시의 시간>이라는 두 개의 초기작이 너무 끌린다. 삶은 상상과 현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지리하고 슬프면서도 몽환적인 것이니까. 그래서 더 리얼리즘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카니발'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이미지와 함께 섞여있다. 영화에 진정 필요한 것은 아무도 뚜렷하게 형용할 수 없는 그 카니발적인 무엇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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