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고은

아흔살 고은이 일말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최영미 시인의 미투 폭로로 자신의 과거 행적이 문제화되었을 때, 있는 그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과 문단, 독자들에게 사죄하고, 그 후로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일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잘못을 인정한 후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면, 남은 일기장 정도는 출간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욕되게 하지 않고,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불행히도 고은은 매우 멍청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영원히 죽는 길을 택했다. 지금 그렇게 고집부리면 뭐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자체가 그 어리석음의 방증이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고 떠들기까지 했다. 듣자하니 문인/독자 2천 명 대상의 한 조사에서 99.2%가 반성없는 고은의 복귀를 반대한다고 하는데, 이건 문인들과 독자들이 냉정한 게 아니라, 그냥 고은이 자폭한 것이다. 만인보를 쓰고 뭔 꼴깝을 다 떨었어도 말년이 이렇게 부박하고 어리석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생은 한 번 뿐인데,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다.

Subscribe to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