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책세상에서 나온 알베르 카뮈 전집 중 4권을 샀다. 그중 <이방인>을 제일 먼저 읽었다. 예전에, 20대 초반이었던 시절에, 영문판을 읽긴 했는데 거의 기억이 안나고, 거의 처음 읽는 맛으로 읽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질서 안에는 결코 포섭될 수 없는 인간, 그가 이 소설의 화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인칭 시점의 소설이 작가와 중첩되는 지점이 이 소설이서는 다분히 모호하다. 현재형인듯하다가 과거형이며, 아니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을 일에 대해서 그렇게라도 될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이 불분명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두번째 모호한 점은 주인공(뫼르소?)이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대하는 태도인데, 이 '과거'가 없는 인물이 짜여진 각본으로 이루어진듯한 가짜 덩어리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정황은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점이 <이방인>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서사에 동력을 부여하는 힘인 것 같다.
세번째 모호한 점은 이 인물의 관계맺음의 형태인데, 그는 '사회화'된 독자들이 판단하는 기준과는 전혀다른 판단기준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너무도 경계 밖의 것이기 때문에 아주 시시때때로 독자를 당혹케하는 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이방인'다운 성향이 서사의 종결부로 치달아가면서 변화한다는 점 때문에 모호한 지점들이 생긴다. 풀리지 않는 논쟁 지점들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평론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왈가왈부하는 점들이 있겠지만,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사르트르의 평론이 탁월하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가 모든 모호한 지점들에 대해서 부러 계산하고 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추구한건 오직 모호함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밖에 모호한 점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그저 모호함으로 남겨두는게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카뮈에 대해 말하면서 '실존주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카뮈가 누차 말했던 것처럼 그런 규정은 부적절해보인다. 카뮈는 그저 카뮈이고, <이방인>이 뻗어나가는 세계는 이 식상한 짜임새의 각본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세계 외부의 그 무한함 만큼이나 광대해보인다.
나는 다시 광대한 세계로 한 발짝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