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후

인간에게 절망하고 인간에게 희망을 본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로부터 절망하고, 또 별 수 없이 나로부터 희망을 갖는다. 나도 그저 그런 인간 중 하나니까.
4년 전 즈음, 나는 실망스럽고 역겨운 여러 일들 때문에 정말 절망하고 화가 났었다. 우울과 환멸감, 공황장애, 그리고 인간이 너무 싫어져서 성격도 진짜 시니컬해졌다.
그때 내 화를 삭여준 몇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쉼, 하나는 한 상담가와의 대화, 그리고 하나는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였다. 웃기지만, 그때 그걸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소화해서 마음의 위안을 받곤 했던 것 같다.
가끔 불가역적인 상황에서의 치욕스러운 패배로 엄청 화가 났을 때, 인간으로부터 절망적인 감정을 느낄 때, 그때의 배움과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야 나도 지키고, 냉정한 판단도 할 수 있고, 더 현실적이고 치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지하는 계급과 운동의 처지를 냉정하게 따져볼때, 앞으로도 최소한 십년 간 나는 치욕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따금 승리하고, 이따금 영광스러운 날들도 있겠지만, 결정적이고 거국적인 순간에서는 별 수 없이 절망과 치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절망을 느끼지 않기 위해 비켜서거나 모른척하거나 우회전하고 싶진 않다. 고집스러운 훈고학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건 현실주의가 아니라, 외면하거나, 나를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현실주의자는 냉정하게 상황과 나의 처지를 알고, 치욕을 곱씹고, 절망을 알리바이 삼지 않으며, 십년 후의 승리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더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