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배
지난 일요일 부활절 예배를 '구경' 간 적 있다. 그곳에서 지회장님의 기도를 듣고, 어느 감리교 목사의 기도를 들었다. 자본의 탐욕과 우리 모두의 죄의식을 질책하는, 그런, 기도였다. 격정적이기에 눈물이 나는, 그러나 죄의식에 대해 공히 확인하는 것이 가히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성동 가가린에서 일요일과 월요일마다 알바를 한다는 영글을 찾아갔다.
일인시위 하자. 어떤 일인시위? 그냥.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일인시위. 뭐라고 말하지? 글쎄... 자본과 언론과 정부가 죽였다!? 정부는 살인마?
우선 박스부터 구해오자. 새로 연 고깃짐 앞, 삼성 시스템 에어컨이 들어있던 커다란 박스를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다. 뭐라고 적어야 하는데, 뭐라고 적어야 하는데... 뭐라고 적지?
막상 무언가 써야 했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가장 무난한게 '무사생환'이었지만, 말하면 말할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바보 같아지는 기분이 들어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그래. 일단 가보자. 청와대 앞에 가면 뭐든 생각이 나겠지.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창성동 골목에서 불과 100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청와대 앞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청와대 앞으로 가려는 일군의 남자들이 있었다. 몇 시간 전 보신각 앞 부활절 예배에서 봤던 촛불교회 신자들이었다. 경찰은 아무 명분도 없이 인도를 통한 그들의 발걸음을 가로 막고 있었다.
나는 빈 박스를 들고 청와대로 갔다. 중간에 제지하는 경호원과 경찰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박스를 들고가는 '행인'을 제지할 명분은 없었다.
청와대 앞 도착. 향린교회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어린 넋들을 기리는 길거리 예배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냥 벤치에 앉아서, 빈 박스에 무엇을 적을지 생각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글이든 적는 그 순간 미끄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경호원과 형사들은 대체 왜 빈 박스를 들고 이곳에 앉아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나는 이 동네 사는 주민에게 그런 물음은 우스꽝스럽다고 말했다. 어떤 경찰은 나에게 가방을 뒤져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코웃음을 치며 그런 웃기는 질문을 하는 당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해는 저물어갔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상자를 들고 청와대 앞에 섰다. 경찰들과 경호원들이 모여들어 나를 빙 둘러쌌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박스를 들고 있는 나를 말이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걸까? 그들은 그만큼 긴장감에 휩싸여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두려워하고 있는걸까? 우리는 무엇을 주저하는 걸까? 노란색 리본을 달고 지하철을 타다 만난 편의점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는 노란색 리본만 봐도 눈물이 난다며 울먹였다.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다. 우리는 용기를 잃은 바보들처럼, 온갖 죄책감, 어리석은 망상 끌어안고, 바보같은 '언어'를 뱉으며 갈팡질팡 문 앞에 서 있다.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어디에 갈지 모른다.
나는 도시 곳곳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분향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차라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구체적으로 울분을 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형언하기도 어렵고 헤어나가기 어려운 죄의식, 내내 끌어안고 있다가 화병 걸릴것만 같다. 오래된 무력감에 쓰러져버릴것만 같다. 운동세력에게 이 분노를 끌어모을 힘이 없음을 냉정하게 인식할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의 핑계거리가 될순 없지 않은가. 실력 없는 우리들의 벙어리 같은 용기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민중의 슬픔과 분노, 목구멍 아래까지 차오른 울분에 제 정신 차리고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자본과 정권 뿐이지 않은가!
골목과 골목에, 거리와 거리에 노란색 리본을 달고, 거리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우리 아이들을 죽게 만든 모든 것들을 전복시켜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잔혹한 시스템을 변화시킬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반드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