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

벤야민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

요즘 김진영 선생님의 <꿈꾸는 우울 - W.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해>라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이건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강의이다. 내가 벤야민 전집을 읽었던 것에서 찾아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그 강의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강의를 들으며 정리한 메모이다.

​벤야민이 지닌 어떤 이중적 면모를 보면 그가 저술한 텍스트가 지닌 비슷한 면모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유태인 부르주아의 아들답게 자못 부르주아적인 멜랑콜리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나 사실 좀 더 뚫어지게 응시하다보면 그 무엇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벤야민의 진면목이다. 그의 모습처럼 그의 글도 언뜻보면 지나치게 메타포적인 것 같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유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굉장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역사철학테제>. 역사 전체라고 하는 것을 전복하려는 생각을 가진 점에서 이 텍스트 속에는 엄청난 것을 갖고 있다. 텍스트는 고요하지만, 심지가 달린 촛대 같이 점화하지 않으면 촛대일 뿐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김진영 선생님에 의하면, 우리가 벤야민의 역작 <역사철학테제>를 읽는다는 것에는 어떤 '점화'의 의의가 있다. 벤야민이 저술들에서 콘텍스트적인 '인용'한다는 것은 그 텍스트를 '폭발'시키려는 뜻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독자인 우리는 인용문을 우리의 생각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벤야민에게 인용은 그 텍스트를 와해시키는 것, 폭탄을 집어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하기를, 우리는 텍스트를 읽을때마다 그 결을 거슬러서 거꾸로 읽어야 한다. 결을 따라 읽으면 폭발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거꾸로 읽는 다고 할때, 이것은 바로 역사 읽기이자 텍스트 읽기, 세상보기가 되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런 시선으로 파리를 바라보고, 자신의 유년을 바라보고, 괴테, 프루스트, 카프카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독서의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씌어지지 않는 것을 읽는 것이다. 텍스트에는 두 개의 층위가 있어서, 거꾸로 읽을 때만 읽을 수만 있는 텍스트가 있는데, 따라서 읽으면 안 보이는 층위가 있지만, 반면 문자 층위(표층 층위)를 거꾸로 읽으면 떠오르는 층위가 있다, 바로 그것이다. 벤야민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 벤야민의 글은 어떻게 보면 독서 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것이지만, 그 쓰기는 거꾸로 쓰여진 것이니까!

“그렇다면 앞서 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고 과거 역시 이 힘을 요구할 권리 즉, 상속권을 되돌아 달라고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물론 이러한 요구는 값싸게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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