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어조크의

베르너 헤어조크의

헤어조크의 미친 영화 <피츠카랄도>를 봤다. 지금까지 본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네 편들 중 가장 밝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젊은 시절의 밑장 다 보겠다는 심보는 막판에 수그러들고 어느 정도의 굴복이 보인다. 다만 세상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인물은 여전히 드러난다. 카루소의 오페라 공연에 미친듯이 열광하는 주인공 피츠카랄도는 아마존강의 정글 속에 카루소의 오페라 공연이 상연되는 극장을 짓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이미 그는 한번의 거대한 실패를 겪어 파산했던 인물인데다 그가 구상하는 고무 수확의 계획이 너무나 허황스러워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미친 짓이라는 소릴 듣는 것이다. 이런 전제는 이 전의 작품들과 일정한 맥을 이룬다. 세상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 광기의 발현이라는 전제.

결국 그는 도시에서 성매매업을 하는 여자 포주 연인과 어느 갑부를 꾀어서, 낡은 배를 수리하고 아마존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 상류는 저 유명한 식인종 원주민들이 사는 곳이어서 항해 과정에서 선원들은 도망치거나 분쟁을 일으켜 내쫓긴다. 결국 넷만이 남아 항해하던 그들은 식인종을 만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도리어 그들의 도움을 얻게 된다. 그리곤 두 개의 지류를 사이에 둔 땅이 가장 좁은 지역을 가로질러 배를 옮기기 시작한다. 밀림 속의 작은 산을 넘어 배를 옮기는 것이다. 이런 무모한 모험은 전작들과 닮아있다.

헤어조크의 광기어린 프로덕션은 악명이 높았다..

확실히 이 영화는 <아귀레, 신의 분노>의 속편 같은 인상을 준다. 우선 클라우스 킨스키가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처럼 아마존강에서의 무모한 모험을 강행하는 (현대의) 정복자 '피츠카랄도'로 분하고 있고, 두려움의 대상으로서의 '식인종 원주민'도 등장한다. 다만 다른 점은 이 식인종 원주민이 연대의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점,리고 이야기가 완전한 파국으로 치달을 것처럼 나아가다가 마지막에 멈추어버린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카루소의 오페라 가극이 흘러나오고, 그리고 이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핵심적 시퀀스로서 배를 산 너머로 옮기는 장면들이 기이한 감동을 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기가 막혀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영화를 찍을때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감히 저것을 진짜로 실행한다는 생각을 품는다는게 가히 광인답다는 생각들이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헤어조크에게 있어서 영화적 속임수 같은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구상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완전히 그대로 이행한다. 물론 마지막에 배가 급류에 떠밀려내려갈 때에는 빈틈이 느껴지긴 했다. 급류에 떠내려가는 와중에 배에 배우들이 타고 있을때의 위험을 걱정했는지, 멀리서 찍은 모든 풀쇼트에서 갑판 위에 오른 배우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아쉬운 점은 마지막에 식인종 원주민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무지, 마지막의 수상 공연이 왜 이런 방식의 이야기에서의 결말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내가 상상한 건 식인종 원주민들이 저 밀림의 숲 속에서 나타나 다시 올라오는 배를 급습한다거나, 아니면 배 아래층의 기관실에 숨어있던 그들이 갑자기 갑판 위로 올라와 공연을 중단시키고 이 배 전체를 급류에 사는 악마에게 제물로 바칠 걸 상상했다. 너무 파괴적인가. 아무튼 결말이 이렇게 감미롭게 끝나버려서 영화 전체가 갑자기 거대한 꿈이었던 것처럼 끝나는 느낌이 강했다.

그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뿜는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다. 피츠카랄도와 원주민의 관계가 예술가와 대중의 관계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내가 볼땐 그건 너무 작위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고, 베르너 헤어조크(혹은 클라우스 킨스키) 자신과 자신들이 바라보고자 하는 실재계 너머의 상상적 유물들의 관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삶을 끝장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모종의 환상적 실체가 다가오기 마련인데, 그 존재는 두려움과 공포, 연민과 격정, 죄의식의 대상이 되곤 한다. '폰도'라고 부르는 아마존강 상류의 "악마적" 급류가 그 경계라면 이들이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섰을때, 그것은 모종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말라는 경고 같은 것 말이다. 다음에 오면 정말 죽여서 대가리와 뱃 속 모든 것들을 먹어치우고 몸통 안에 돌맹이를 가득채워 집으로 돌려보낼테니 다시는 오지말라는 '자연적' 경고. 그런 점에서 보면 결말을 지지하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의 OST 음반은 오페라 음반 중에서도 꽤 유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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