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어조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

베르너 헤어조크의 72년작 <아귀레, 신의 분노>.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는 아니다. 그만큼 헤어조크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16세기초 스페인에서 출발한 신대륙 원정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금으로 가득하다는 전설의 땅 엘 도라도를 찾기 위해 원정대는 아마존의 숲 속을 헤맨다. 그러다가 어느 거친 물살이 흐르는 강가 앞에 도착하는데, 그 순간 '아귀레'의 밑도 끝도 없는 분노 혹은 욕망이 발동된다. 이 욕망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가 중요하다. 분명 아귀레의 욕망은 파괴적이며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살인도 서슴지 않으며 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나 교회에 대한 복종심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대체 이 파괴적 윤리가 드러내는건 뭘까? 그런 질문이 내내 맴도는 영화다.
영화는 이런 메시지의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잉카제국에 대한 스페인의 약탈과 정복 이후에 원주민들은 아마존 지류의 늪지대에 있다는 황금의 땅, 엘 도라도의 전설을 꾸며냈다. 이에 피자로가 이끄는 스페인의 대규모 원정대는 1560년 말에 페루 산맥을 출발했다. 이 기록은 잃어버린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인 수도사 가스파르 드 카바잘의 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 1560년 크리스마스. 우린 안데스산맥의 마지막 산길에 접어들었다. 그곳은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원시림이 아래에 펼쳐진 곳이었다. 아침 미사를 마치고, 우린 구름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강가 앞에서 난관에 봉착한 원정대의 대장 우루수아는 회군을 결정한다. 그러나 그 순간 부관 아귀레의 반역이 시작된다. 아귀레의 도착적인 욕망이 가리키는 지점은 '정복'이다. 누군가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숲 속으로 나아가 멕시코의 정복자가 되었듯이 자신도, '우리'들도, 새로운 땅 엘 도라도의 정복자가 되리라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결코 미래를 의심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나아갈 뿐이다. 하나둘씩 동료들이 죽고, 허수아비로 세워둔 황제가 죽을때조차 아귀레는 의심없이 나아간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정복했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을 정복한 것일까? 강가의 숲 속에서는 식인종 원주민들이 나와 독침화살을 쏘고, 동료들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고, 수십일간 계속 가도 영원히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가관이다.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가 바다로 가면, 그 바다에서 기어이 자신은 새로운 땅의 정복자, 스페인에 대한 절대적 저항자가 될 것이라고 혼자 소리친다. 마침내 뗏목 위에 혼자 남게 되더니 광기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멕시코 점령을 결정하는가 하면, 순수한 종족보존을 위해 (이미 독침에 맞아 죽은) 딸과의 결혼을 선언한다.
이 영화에 대해 단순히 어떤 무모한 독재자의 최후에 대한 풍자로만 평가한다면 그리 할말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왜 다큐멘터리적으로 나아갔으며 페루의 밀림 숲 속에서 그렇게 지옥같이 헤매이며 영화를 찍으려 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귀레의 도착적 욕망이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어쩌면 2010년에 보는 이 영화의 새로운 의미는 그런 지점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모두들 의심하고 회의하며, 냉소하는 시대에 맨 처음 '정복'을 선언한 무모한 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아닐까? 그렇다고할때 이 영화의 카메라 미학은 진정한 조화를 이룬다. 데뷔작 <사인즈 오브 라이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좀 더 나아간 느낌이다. 종반부에 밀림이라는 환경의 생경한 모습들을 다큐멘터리적으로 담는 쇼트들의 몽타주는 정말 훌륭하다. 왜 헤어조크가 '편집광'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아귀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이 영화를 더 나아가게 만든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 빛을 발하진 못했을 것이다. 진짜 미친자의 광적인 연기를 보았다. 실제로 그는 지옥 같은 영화촬영기간 때문에 결국 미쳐가서, 나중에는 기이한 광기를 부렸다고 한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미친 것이 분명한 감독 헤어조크가 그의 머리통에 총을 들이대며 말했다고 한다. "영화를 계속 찍을텐가, 아니면 여기서 죽을텐가?"
그 후로 둘은 내내 콤비가 되어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헤어조크의 유일한 페르소나가 되기에 충분했고, 헤어조크가 비로소 그를 만났기에 자기 영화세계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킨스키가 죽은 후에 헤어조크는 "클라우스 킨스키를 만난 것"에 대해 "그것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p.s. 베르네 헤어조크가 클라우드 킨스키에게 총을 겨누고 위협했다는 말은 조금 과장된 소문으로, 실제로는 베르네 헤어조크가 촬영을 그만두고 떠나겠다는 클라우드 킨스키에게 "지금 내 텐트에는 권총이 한 자루 있소. 당신이 그만둔다면 그 권총으로 당신을 쏠것이고 다음엔 내 머리를 쏠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