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의 정령

벌집의 정령

아나 토렌트가 다섯살이었던 1973년 제작된 영화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있는 것 그 자체로 느껴지는 듯한 연기를 펼친다.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진심을 보여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1939년에서 41년 정도의 스페인 프랑코 독재치하의 시절에 한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세계를 담았다. 절제되어있고 느린 쇼트들이 아나의 감정과 당시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의 풍경을 잘 담아낸다. 이 영화를 찍을때 촬영감독이었던 루이스 쿠아드라도Luis Cuadrado는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뿌옇게 다가가는 카메라 렌즈 속의 세상이 누구보다 어울렸던 것으로 느껴진다.

한달전 쯤 유럽영화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잠시 소개받고, 꼭 봐야지, 하며 벼르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다. 스페인 감독으로, 거의 10년에 한 작품 만들까말까한다는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데뷔작이다.

'벌집'과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정령과 현실이라는 상징과 은유들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영화를 가득채운다. 프랑코 독재치하, 공화파는 패배했고 전 유럽에서 사회주의 스페인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병사들은 죽거나 해체되었다. 이런 시대적 전말을 영화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 시기, 어른들은 무언가 모호하고 뿌연 눈으로 자기 안의 세계에 갇혀있다. 아나의 부모들도 각자의 과거에 갇혀 아나의 질문에 모호하게만 말할 뿐이다.

아나는 마을회관 같은 공간에서 마을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본 영화 <프랑켄슈타인>(1931)을 보게 된다. "단단히 준비하십시오. 충격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공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의 영화는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호러적인 분위기로 말하는 영화속 신사의 소개로 영화 속의 영화는, 그리고 단체 관람의 풍경으로 <벌집의 정령>이라는 이 영화는 시작된다. 아나는 왜 괴물이 소녀를 죽였는지, 왜 사람들은 괴물을 죽이려하는지 궁금해한다. "이사벨, 왜 아이를 죽인거야? 왜 죽였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아나는 묻는다. 예컨대 독버섯에 대해, 영화 속 괴물의 죽음에 대해, 벌들에 대해 말이다. 영화의 종반부에 탈영병 또는 공화파 정치포로 수송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병사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쳐나왔을때, 아나는 언니인 이사벨의 말대로 정령이 있다고 믿는 빈 집에서 그의 구두끈을 묶어준다. 그러나 그날밤 병사는 홀로 남아있다가 무수히 쏟아지는 총에 맞아 죽는다. 아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로 부터 도망치고, 늦은 밤 어른들이 아나를 찾아 다니고 있을때, 아나는 한 연못가에서 환상적인 경험을 겪는다. 그녀의 뒤에 프랑켄슈타인이 나타나 연못 물 위에 비춰지는 것이다. 가히 압권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보고 싶다. 지금, '한국'이라는 땅, 한국 사회에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이 잊혀졌던 고전이 살아나거나, 아니면 다시 또 만들어지는 것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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