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당한 관계와 청춘, 영화 『아이다호』

배반당한 관계와 청춘, 영화 『아이다호』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
감독 구스 반 산트, 주연 키아누 리브스, 리버 피닉스

이 전설적인 영화 <아이다호>는 아이다호의 황량한 사막 위 초연하게 뻗어있는 아스팔트 길에서 시작되어, 다시 그 길에서 끝난다. 스물세살에 치명적인 마약 중독으로 죽은 리버 피닉스, 그리고 지금 헐리우드 SF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자신만의 선하고 갈팡질팡하지만 세계를 구하고마는 영웅의 이미지로 구축되어있는 키아누 리브스. 이 16년 후의 현실과 기묘하게 결합되어있는 듯 영화 속 두 인물은 계급적 갈등과 캐릭터의 성격으로 대립한다. 예컨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인 키아누 리브스의 방황은 부르주아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춘기 소년의 이유없는 방황으로, 변변찮은 부모도 없는 리버 피닉스의 방황은 계급적 모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방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에겐 돌아갈 곳이 있고,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리버 피닉스에겐 돌아갈 곳도, 정처할 곳도 없다. 게다가 기면증 환자로 긴장만 하면 종종 기절하기도 한다. 거친 세상을 거칠게 살아가지만 그러나 가장 연약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찾아 로마로, 사막으로 떠나지만 다시 빈손으로 돌아올 뿐이다. 이상적 안식처가 잃어버린 어머니로 은유되고, 사막 위 길을 외롭게 걷는 이미지가 하나의 모순-현실과 마주치게 되면서 이 영화는 완성된다. 동성애와 우정 사이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두 스무살 청춘의 관계도 인간관계의 현실적인 면모를 가장 스타일리쉬하고 적절하게 보여주는 다른 측면이다. 계급 모순과 인간관계 형성의 위계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둘은 애초에 마주칠 수 없는, 다른 길을 가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영화 종반부에서,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로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의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뤄지는 바로 그 옆에서, 부랑자들의 대부로 군림해오다가 키아누 리브스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해 충격으로 죽는 '밥'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다. 둘은 기묘한 광경에서 마주치고, 그들은 서로의 삶이 다름을 느낀다. 둘은 다른 세계 안에서 살아갈 것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막 위에 남겨진 것은 리버 피닉스 뿐이다. 사랑마저 배반하는 모순으로 가득찬 사막같은 세계 위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이 영화 <아이다호>나 <허공에의 질주> 같은 리버 피닉스가 출연한 걸작들은 그가 스물세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현실과 묘한 맥락성을 갖는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영화가 '현실'이라는 범주 안에서 마주치는 것이다. 어차피 리버 피닉스라는 개인에게 남겨진 현실이란 타인에 의한 기억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삶이 있었다는 그 자체는 영화를 통해 계속해서 재생된다. 그것은 때론 신화화되고, 때론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 같다.

Subscribe to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