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사진론에 대한 메모

발터 벤야민 사진론에 대한 메모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에 대해 벤야민은 사람의 얼굴로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찍은 사진으로부터 '아우라'를 없앤 작가라고 말하고 있다. 당대의 초상화적인 미술 전통과 절연하고 '유형학적 사진'의 계통을 창시한 최초의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 그는 사람의 얼굴들을 일곱가지로 분류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대지'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멀어져가는 순으로. 그런 식으로 인간의 직업군을 분류하고, 그 유형학적인 분류로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가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직업은 방랑자이다.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도시 빈민들, 집시들.

아우구스트 잔더, '모젤의 집시들', 1931년

​농부는 '농사일'의 범주 안에서 자기 정체성이 끝나지 않는다. 직업에 따라 신체 역시 변하게 된다. 몸 동작과 자세, 체형이 변하는 것이다. 잔더에게 사람의 얼굴은 다른 모든 '아우라'나 '영혼'보다는 사회적인 위치나 직업, 공동체에서의 성향 따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것에는 고유의 것, 영혼의 영역이 없다. 자연의 영역이 아니라 문화의 영역, 사회의 영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에, 우리의 얼굴도 이데올로기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벤야민에 의하면 앗제가 도시로부터 '아우라'를 제거했다면, 잔더는 인간으로부터 '아우라'를 제거했다. 이제 얼굴을 변화 가능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텅 빈 공간에 무엇이 들어와야 할까? 개인의 얼굴이 아닌 사회의 얼굴, 군중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보지 않았던, 아담의 시대에 있었지만, 그후로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못했던 얼굴이 복원되는 얼굴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탄생하고나서 얼마 후 사진이 갖고 있던 혁명적 에너지는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도록 완전히 폐기되었다. 어쩌면 사진사의 초창기였던 19세기 사진은 백조의 Swan song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백조가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 한 곡. 으젠 앗제이제, 아우구스트 잔더. 그 이후로 사진이라는 이름의 'Swan'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지니고 있던 에너지는 영화라는 매체로 건너갔다. 벤야민에게 미메시스적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그 때문에 테크닉이 중요한 것이다. 테크닉은 유물론적 성찰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미메시스의 이동처 구실을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인간적인 것은 기술에 의해 억압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억압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테크닉 속으로 도피한다. 하기에 테크닉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억압이지만 또 하나는 그것의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는 사진의 종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진의 완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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