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운동에 대한 어느 학생운동조직의 인식
'문화예술운동'이라는 명명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어본다. 이것은 거의 모든 것을 소급시킬 정도의 품을 지닌 말이다. 문화, 예술, 운동. 그러나 각각을 하나의 명명으로 이을 수 있는 존재론적 맥락은 아주 희미할 뿐이다. 요컨대 '문화운동'이라는 말에는 문화 중에서도 어떤 문화들에 대한 것으로 한정시키는 맥락의 운동양태가 존재해온 것에 대한 사후적 명명의 맥락이 존재한다. 다른 말로 이것은 대중문화의 어떤 상업적 폐해들에 대해 비판하는 비평가집단의 캠페인이거나, 미술이나 영화와 같이 강력한 예술가 집단군이 포진해있는 영역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담당하는 운동이 된다. 따라서 이것 역시 하나의 사후적인 존재에 대한 '집합'의 이름이 되지 하나의 속성으로서 명명해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역사 맥락적으로 "문화가 예술이고, 예술이 문화가 아니겠냐"는 식의 지난날 근대사상의 수용하는 입장에 서있던 세련되고 진보적인 근대주의자들의 시선을 드러낸다. '문화'의 어원적 의미는 사전적 의미들 중의 맨 앞자리에 차지한 것들인데, "구미풍(歐美風)의 요소나 현대적 편리성(문화생활 ·문화주택 등)",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풍의 요소(문화인·문화재·문화국가 등)"를 일컫는다 하겠다. 애초에 "문화, 예술"이 "문화예술"이 되게한 것의 욕망에는 후진적인 이 땅의 소양들을 서구적이며 선진적인 것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의지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자체로 체제에 反할 수 밖에 없는 급진성과 초언어적이며 반사회적 속성을 지닌 '예술'의 '문화'와의 배합은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이라 하겠다.
문화예술운동이라는 말 자체에는 근대사상이 지닌 진화주의의 지린내가 내재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명백히 한계적이다. "문화예술운동은 부르주아들에게 빼앗긴 문화와 예술을 인민 일반에게 되돌려주는 운동"이며, "일탈과 저항의 에너지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서 해방의 에너지로 돌리는 운동"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다. 나는 그것이 세연이만의 개인적 고찰들의 소산은 아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운동의 잔재가 언어적으로 표면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 정의는 그 자체로 예술을 도구적으로 소급시켜버리며, 예술이 지닌 안정된 체제, 가려진 욕망들과의 불가역성을 폐기처분하는 효과를 지닌다. 나는 그 말에서 <반지의 제왕>의 반지원정대 따위가 생각났다. 부르주아라고 불리우는 저 산 너머와 이 들판 위의 점령자-악마 집단에게 빼앗긴 '예술'이라는 이름의 오색찬연한 생명의 물을 우리--구출대이자 모험가들인 문화예술운동가 집단--가 나서서 다시 쟁취해서, 흑백의 음울함에 빠진 마을을 구하고, 다시 컬러풀하고 생명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해방 마을로 바꾸자는 지시! 일종의 모험적 서사극의 시나리오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고정된 서사 안에 가두는 운동, 상상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지난 시기 무수히 존재했던 모험가들의 서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더군다나 그 기획은 예술가 집단을 일종의 구원자이자 메시아, 엘리트들로 소급시키는 효과를 지니기도 해서, 이미 스스로의 기획에 배반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행히도 우리 안에 내재된 어떤 이데올로기가 보이지 않는가. 첫번째는 예술을 도구적으로 소급시켜 빼앗긴 예술을 구원하겠다는 모험가의 전문가적 이데올로기, 두번째는 예술이란 언젠가는 민중들에게도 존재했었던 순수한, 그들만의 것이었기에 다시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순수성의 이데올로기.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 함정이 시작된다. 아래 인용한 구절은 한 학생운동 조직이 '문화예술운동'에 관해 작성한 자료 중 일부다.
자본가들은 문화와 예술을 재빨리 포섭한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주변에 마치 공기와 같이 포진해있기 때문에 문화를 장악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생활과 이데올로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문화와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보다 고상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 두가지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고 모든 문화를 장악한다. 이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문화예술을 몇가지 특징을 지니게 되는데, 1.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가 이데올로기의 확산, 2. 문화예술에 대한 순수성 이데올로기 확산, 3. 문화예술의 상품화와 예술에 대한 투기 이 바로 그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위의 주장은 다소 음모론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공기"라는 수식으로서 자본주의 그것의 은밀한 속성을 문학적 은유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투박한 설명이 가진 한계를 해소시키려 했지만,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 더 이상 자본주의에 대해 발언할때 음모집단으로서의 자본가 집단을 주체로 두는 것은 곤란하다. 그것은 도리어 반역에 대한 필연적 고지를 빼앗을 뿐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자본가 집단의 음모들에 의해 예술과 문화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가 경제의 영역을 넘어서서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일상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우연한 영속성 때문에 전세계적 체제로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이지, 권력을 쥔 음모가들의 영악한 노력들 때문이 아니다. 더군다나 예술에 대한 전문가적 이데올로기와 순수성 이데올로기는 도리어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던 것이 아닌가. 기이하고도 불행하게도 반복되어 언급되는 이 지나친 적대의식이 우리 자신이 떨치지 못한 이데올로기 자체를 반영해주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에 의해 투여된 노동이 생산한 가치들의 잉여가치에 의해 그 생명력을 가지며,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내재한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해체된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내놓는 잉여된 쾌락들에 의해 그 모순으로서의 자본주의 문화도 양산되었다. 요컨대 그것은 그 잉여들의 이면을 가리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잉여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내재한 속성으로 인해 문화적 자장 안에 그것이 흡입되어오거나 삽입된 것이지, 음모적 기획에 의해 그러하다는 판단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모든 모순과 문제들을 단순화시킨다.
-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예술은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예술이었고, 아울러 노동의 일환이었다. 예술가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점차 예술은 하나의 직업이 되고, 예술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들을 길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동양 역시 직업적 예술가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예술은 기본적으로 인간(물론 지배계층에 한정되는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의 기본 소양의 하나로 여겨지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전문적 예술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결코 향유할 수 없는 고급문화이며, 예술가는 하나의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직으로 인식된다. 사람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망은 더욱 강해지지만, 스스로 문화예술을 창조해낼 수 있는 실력과 상상력은 거의 소진되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전, 정말 예술은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었는가. 위 문단에는 선사시대, 르네상스시대, 봉건주의시대, 지중해시대의 각각의 상황들이 초역사적으로 뒤얽혀있다. 따라서 예술과 인간사회의 관계에 대해 해명하기엔 그 어쩔 수 없는 간명함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하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아니 태동하기 훨씬 그 이전에도 예술은 때때로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모든 건축물들이 그러했으며, 르네상스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미술작품들과 조각상들이 그러했다. 또한 공예가 집단들이 만든 길드의 장인 수공예작품 역시 특정 계급의 의뢰를 달성하기 위한 기획적 생산물들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예술이 반인간적이며 대상화된 '현상'을 오직 그 이유로 하나로 인해 어떤 예술작품의 어떤 특성에 대해 제각각 부정할 수 있는가? 둘째는 그것이 인간의 기본소양이 된다면 예술은 인간-보편만의 것으로 해방되는가? 세번째는 정말 예술에 대한 욕망은 더욱 강해졌으며 실력과 상상력은 소진되었는가? 이다. 내 생각은? 셋 모두 no, 이다.
예술이 노동의 일환인 것은 엄밀히 과거형은 아니며, 오늘날에도 때때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어떤 이상향으로서의 예술의 모습에 대한 낭만주의로 소급될 순 없다. 예술이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었거나 예술가가 특정한 사람이 아니었던 시기는 오직 선사시대 뿐이며, 오늘날에는 때때로 그러하고, 때때로 그러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예술의 불가역성과 반역성이 존재하며,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도, 예술을 자신의 도구로 소급시킬 수 없다. 요컨대 mb나 유인촌이 과감하고 박력있는 시도를 벌이는건 좋은 코메디가 될 순 있으되, 불가능성을 목전에 둔 기획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데올로그에겐 아이러니이겠지만, 직업적 예술가는 도리어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도래와 함께 창작 주제에 대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근대 인상파 미술 전후까지 화가들이 귀족들이나 부르주아 후원가들의 의뢰를 받으면 그들은 오직 그들의 초상화나 귀족적 전원이 담긴 풍경화를 그려야했다. 그러나 몇몇의 인상파 화가들을 시작으로 / 그와 동시에 도래하던 산업 자본주의 시기와 함께 그들은 창작 주제의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다. 오늘날 화가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가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이며 추상적인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이다. 도리어 급진적으로 추상적이며 비가역적인 작품이 화단 자본의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시대의 진전에 따라 사람들의 욕망의 총합도 부풀어나리라는 착각을 갖고 있다. 또는 질적 차원에서도 소비욕이나 잉여가치의 비합성의 확장에 따라 욕망도 질적으로 증대된다는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욕망을 부정적이기만 한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소비욕구 그 자체로 환원시키는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태도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욕망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미 개인들은 스스로의 욕망의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예술의 주제는 욕망이나 무의식의 영역을 자유롭게 탐험하고 있는데?! 예술의 해방자임을 자처하는 '운동'이 욕망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거나 천박한 것 쯤으로 취급하는건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정말 사람들의 욕망은 강해졌는데 그/그녀들의 창의력과 실력, 상상력은 소진되었나? 이 얼마나 인민-일반을 자본주의라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노예들로서만 바라보는 메시아적 태도인가.
- 특히 남한사회에서 예술에 대해 많이 퍼져있는 지배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예술은 정치, 사회, 문화, 계급과 무관한 순수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이다. 예술을 지배하는 자들은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문화예술을 의식성을 높지만 예술성은 떨어진다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문화예술과 정치, 경제가 전혀 무관하게 발달한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이다. 지금 매우 보편적인 미술형식인 정물화는 네덜란드 부르주아들의 요구에 따라 나타난 형식이며, 인상파는 프랑스혁명, 파리코뮌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무용, 음악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의 예술이 정치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나 동양의 문인화가 실은 매우 정치적이라는 것 등, 수 많은 반례들은 이러한 순수성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허구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집요한 공격으로 남한사회에서 예술과 정치는 완전한 결합 혹은 정반대의 매우 극단적인 두갈래의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운동의 위기에 따라 민중예술의 위기 역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예술이 정치나 경제와 전혀 무관하게 발달한다는 말이 완전한 허구라는 말은 참이다. 예로 든 각각의 양식들의 연원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환원론적이다. 어찌 네덜란드 정물화가 오직 부르주아 후원가들의 요구에 따라 나타난 형식일 뿐이겠는가. 네덜란드 still life에 유행적으로 등장했던 해골바가지, 낡은 책, 낡은 만년필 등에 대해 우리는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왜 한스 홀바인 2세의 <대사들>(1533년작)에는 대사들 발 아래에 해골바가지가 정면적으로가 아닌, 왜상적으로 그려졌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굳이 그것에 대해 라캉이나 지젝을 들어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예술과 예술작품, 예술형식의 진전에 대해 말할 때, 단지 "예술은 정치 경제와 정말 밀접한 관련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더욱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지점들을 드러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아마도, "예술은 정치나 경제와 정말 밀접한 관계가 있어!"라고 말하는 건 거의 말하지 않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님을 다들 알 것이다.
더불어, 오늘날 예술이라는 영역에 상존하는 문제가 정말 순수성 이데올로기라고 명명된 것의 문제인지에 대해 반문을 던져본다. 그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정말 자본가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예술의 현상을 질곡시키고 있는가? 내 답은, 완전한, 아니오, 이다. 요컨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거절해야할 질문과 선언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누가 예술작품을 감상할때, "예술작품은 말이야 그 자체로 순수한 것이니까 나는 이 작품을 볼때 오직 이 작품의 내재된 것만으로 감상해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감상하는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품을 통해 그 자체의 감동과 함께 그 자체로 인한 인식의 확장을 펼치는 것이지, 그 무엇도 그것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작품 밖의 어떤 이데올로그가 그것의 감상을 방해할 지언정 이미 그 작품과 접촉한 감상자는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얘들아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은 그냥 단지 소설에 불과하니까, 그거에서 어떤 시대적인 함수나 은유를 읽어내는 건 잘못된 거란다."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개별 감상자인 '내'가 엄밀히 그 외압된 지시에 의해 나의 자유로운 감상을 방해받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감상의 시작과 끝 겉에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감추어져 있을 지언정 감상이 시작된 이상 그것은 이미 '주체'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때, 그것에 대해 제각각의 느낌으로 다른 생각을 품는건 감상자의 자유일뿐만 아니라,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는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그가 어떻게 판단하고 느끼며, 무의식선에 어떤 욕망을 남기든 그것을 내버려두라. 그것에 그 어떤 외재된 설명이나 억압도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평론의 몫은 무엇인가? 평론은 갈증을 느끼는 감상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평론은 창작과 감상의 자장이 아닌 비평과 인문학, 사회과학의 자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것자체의 논쟁이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옳거나 그른 비평은 존재하되, 옳거나 그른 창작 또는 감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가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을 작곡했을때, 소비에트 혁명예술위원회(?)는 그것이 공산당의 예술운동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지나치게 귀족적인 주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며 반혁명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문학에서 미래파 시인들이나 미술에서 미래주의, 모더니즘 화가들이 무수히 비난받고 창작을 금지당했듯 오랜기간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그가 1937년에 교향곡 제5번 "혁명"을 작곡하고 레닌그라드에서 상연했을때 당국은 무수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말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의 주제가 정치나 경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전근대적이기에 그것은 잘못된 예술작품인가? 그리고 교향곡 제5번은 그것의 제목이 "혁명"이어서 찬사받을만한 것인가? 이것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그에 대해 가장 상상력 넘치게 대응한 피카소의 예가 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대중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그림들을 그리며 화단의 찬사를 받고 있을때 소비에트 당국은 무수한 비판을 그에게 가했다. 그것이 반민중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자족적 예술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당시까지 스탈린 치하 코민테른의 자장 안에있던 프랑스 공산당 당국은 난처한 입장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는데, 피카소가 바로 프랑스 공산당의 평생당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어떤 화해를 시도했는데,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에 실릴 스탈린의 기고문에 옆에 피카소가 그린 스탈린의 초상화를 실는 것이었다. 피카소가 어떻게 했겠는가. 피카소는 아주 지극히 단순한 동그라미와 홍당무처럼 붙어있는 눈코입으로 이 거대한 제국의 독재자이자 현실 사회주의 대장이었던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렸다.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란 이런 것이냐는 식의 피카소식 조소였던 것이다.
- 위의 두가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이제 문화예술은 돈을 주고 소비하는 완전한 소비재 상품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노골화되어, 투기와 더불어 경매라는 방식을 거쳐 지나치게 가치가 과장되었다. 문화와 예술이 훌륭한 상품이 되면서 자본은 문화예술에 대한 침투를 강화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심지어 "혁명까지 소비"하는 현재의 상황을 가져오게 되었다. 운동의 위기 앞에서 자본에게 더 이상 운동은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진보는 비싸게 팔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 된다.
예술작품은 정말 소비재 상품이 되었다. 그것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상품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예술작품은 이미 예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시장으로 넘어간다. 오늘날에는 무수한 자칭 예술작품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온전히 예술작품인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난날과 그리 크게도 다른가. '체게바라'가 소비되는 상황은 하나의 증상일뿐, 현상의 극단은 아니다. 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지, 이미 체게바라가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만큼 오늘날 이미지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아무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 현상적 배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어딜가더라도 무수히 쏟아지는 이미지들에 부딪히며, 그것들 대상-이미지들이 가하는 시선들 속에 갇힌다. 도리어 우리가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우리를 감시하며 감싸고 있는 전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뒤샹이 자신의 변기 레디메이드 작품을 뉴욕의 겔러리에 전시한 그 이후부터 형식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스타일리스트들의 투쟁은 더 이상 시효가 만료되었다. 이제 어떤 내용으로, 어떤 욕망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분명히도 오늘날 우리가 말해야하는 바와 우리가 표현해야할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떤 장소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상연되는가가 우리의 고려대상이 되며,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정체되어있고 굳어가는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는 강한 내리침이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어디선가 본듯하며, 어디에선가 이미 들었던 이야기, 언젠가 이미 지나쳤던 식상한 것들은 아무것도 일깨우지 못한다. 존재론적으로 아무것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으며 복잡다기한 삶을 그 자체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꾸만 감추력고만 하는 우리 안의 비밀들에 대해서 아이러니컬하고 농담끼 가득하게 주절거리는 그런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 소설, 그런 그림, 그런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이 기나긴 기다림들에 지쳐 차라리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수동적인 수용자로만 그치던 인민 일반이 스스로 예술 창작의 주체가 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현재 남한의 문화, 예술, 운동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분리주의와 문화주의가 아니다. 분리주의는 오직 자신의 창작을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386세대의 오래된 아저씨들의 협소한 대인기피증에 불과하며, 문화주의는 마찬가지로 예전에 같이 운동해서 친했다가 문화판으로 옮겨간 386세대 아저씨들의 내재론적 변명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들은 '예술'이라는 거대하고 위대한 우리들의 무기에 '문제'라고 덧붙이기에는 아무 문제꺼리도 되지 않는다. 그저 선수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끼리 해결하면 될 지난 시절의 관계의 단절에서 온 상처들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술자리 안주꺼리일뿐이다. 오직 문화, 예술, 운동이 직면한 진짜 문제는, 무수한 주체들의 발굴과 폐쇄된 도시공간에서 만들어질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상연할 공간을 위한 투쟁뿐이다. 우리에겐 접합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체 어디에서 영화를 틀고, 어디에서 그림을 걸며, 어디에서 책을 팔 것이란 말인가. 시장은 저들에게 잠식되어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투정은 필요없다. 아무도 예측해지 못한 빈 공간을 찾아내는 운동이 필요할 뿐이다. 저기 저 용산 철거촌의 골목길 옆에서, 독립영화 전용극장 설립운동의 과정에서, 인권영화제 운동의 역사에서, 인천 부심의 골목길에서, 낙원상가 한 켠에서 그 빈자리를 찾아낸 가장 좋은 최근의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