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멋진 하루』 | 신자유주의 라이프스타일의 기벽

영화 『멋진 하루』 | 신자유주의 라이프스타일의 기벽

광주극장에 갔다. 이름만 들었던 그곳은 아주 오래된 극장이었다. 광주 유일의 씨네마떼끄이며, 좋은 영화들이 하는 곳. 그리고 이윤기의 두번째 영화 <멋진 하루>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전히 상영되고 있는 곳.

하정우와 전도연이라는 현재 한국 최고의 배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았고, <여자, 정혜>의 섬세한 연출력과 여성적 감수성으로 주목 받았던 이윤기 감독이 각복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일본의 어느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데, 영화화하면서 손 댄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느껴졌다. 요컨대 이 영화는 최근의 어느 영화보다도 대단히 동시대적이며, 한국적인 영화다. (서울이라는 독특하리만치 괴기하고 우스꽝스러운 풍경들을 내뿜는 도시 공간의 곳곳을 배회하고 또 방랑하면서 두 주인공은 신자유주의 금융화라는 시대가 만들어내는 도시의 퐁경을 쓱싹쓱싹 스케치한다.)

하정우는 현재 한국영화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캐릭터적인 몰입도를 말그대로 마음껏, 영화 속에 쏟아낸다. 아마도 그는 정말 마음껏 연기했을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이 입지전적 캐릭터는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도시의 질리도록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장기 불황 속에서, 배속되지 않으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남자이다. 그는 철저히 돈 대 돈으로 이완-수축되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계의 그물망에서 한발짝 벗어나있는 인물이다. (영화 안에는 그 과거의 전사가 나오진 않지만) 자신이 "여유로울땐 좀 베풀고, 어려울땐 얼굴에 철판깔고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남자다. 그의 능청스러움과 '철이 너무 없어서' 귀여워보이기까지한 점들은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의 주위에 묘한 관계로 미스테리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여자들은 거리낌없이 그에게 도움을 주며, 그 몇십만원부터 백만원의 돈을 꿔주면서도 아주 즐거워한다. 마치 자신의 기쁨이 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헤어지면서 350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려주었다가 1년동안 연락이 끊겼던 옛 애인 하정우를 찾아 돈을 갚으라며 독촉하는 옛 애인 전도연은 하정우의 그런 점들이 불만스럽고 의심스럽기만 하다. "대체 얼마나 여기저기 감정을 흘리고 다녔길래"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곳에서 꾸어서 다시 꾼돈을 메꾸는 분방한 삶의 방식을 갖고 있는 하정우. 오랫만에 만난 이 옛 연인은 기묘한 방랑을 시작한다. 도시공간의 곳곳, 잘나가는 CEO 부르주아 여성부터 시작해서, 시집을 잘가서 비싼 아파트에 사는 여성, 대형마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혼녀, 히피들과 함께 더불어사는 히피족 여자까지. 온갖 계급의 온갖 여자들을 만나며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만드는 도시의 풍경을 하나하나 그려내는 것이다. 이 풍경은 공간적/공학적이기도 하며, 인간 대 인간의 관계망이 만드는 시대의 공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둘은 둘의 관계에 얽힌 거짓으로 둘러대었던 면모들과 사회적 공간, 사회적 관계와 얽혀있는 복잡다기한 점들을 어렴풋하게 발견해나가고, 전도연은 마음의 상처의 치유를 도모한다.

그리고 늦은 밤, 결국 어떤 경제적으로 얽힌 상황이 해소되는 그 순간, 내리는 비로 흐릿해졌다가 이내 창닦이로 닦이는 자동차 창 밖으로 하정우의 능글맞은 표정이 드러난다. 전도연은 이제야 완전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한심하고 철없기만 해보였던 하정우의 삶도, 긍정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남자는 또 어디로 도망칠까?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위해 고군분투 하는 두 남녀가 애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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