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문장론

롤랑 바르트의 문장론

소설이라는 매체에게 있어서 '의미'란 '생산' 가능한 것일까? 그러니까 작가가 소설을 쓸 때에 '의미'라는 것을 염두해두고 그것을 창작해나가는 것이 가능한 것(의미있는 것)일까? 요컨대, '교훈'이란 생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항상 이 의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읽기'란 무엇이며, '쓰기'란 무엇일까? 물론 그 어떤 쓰기나 읽기라는 행위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없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하는 자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론적 자각이 없을지라도, 소설에는 '의미'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롤랑 바르트의 문장론, 플레베르론을 살펴보았을때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소설가' 구스타프 플로베르는 결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쓴 '적' 없었다. 요컨대, 우리가 대작이라 일컫는 <마담 보바리>는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플로베르는 문장과 문장을 잇는 것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았을 뿐, 무슨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 <마담 보바리>를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아니다.)

그렇다면 문장이란 무엇인가? 문장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이란 끊임없이 그 다음 문장과 연결(접촉)되고자 하는, 일종의 에로스이다. 에로스의 본성은 '중단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이며, 끊임없는 운동의 추이가 플로베르의 텍스트인 것이다. 요컨대 '문장'이란 몽타주의 고리들, 조각들이다. '쓰기'는 몽타주이기도 하며, 읽기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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