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탈랑트, 장 비고, 홍상수

<라탈랑트> (L'Atalante)
1934, 프랑스, 88min.
연출 장 비고 Jean Vigo
출연 미셸 시몽, 디타 파를로, 장 다스테
장 비고의 유작. 그는 평생 4편의 장편영화만을 찍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프랑스 클래식 영화 <품행제로>와 <라탈랑트>를 남겼다. 오늘로 이 영화를 세 번째보지만, 또 봐도 참 재밌는 영화다. 2006년말에 미디액트에서 김종관 감독의 소개로 봤고, 2007년에 수업시간에 봤으며, 바로 오늘인 2008년 1월 10일에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홍상수 gv에서 또 봤다.
이미 이 영화가 시작하는 7시보다 1시간전쯤에 좌석이 매진되었다. 다들 홍상수 감독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영화는 프랑스 고전영화 특유의 낭만주의적 색채와 장 비고 감독 영화에서 보여지는 하층 계급 인물들의 감정과 일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홍상수 감독이 GV에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에는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홍상수 감독은 특유의 언변으로 아주 단순하게, "정말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사랑하는 감정으로 예쁘게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그런 감정들을 전이받는다면 어쨌든 그랬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거다. 테크닉적 기교 대신 감정과 순발적인 영감들이 살아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순간순간의 유머와 재치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 특히 라탈랑트호의 선원 할아버지로 출연하는 미셸 시몽은 그 자체로 살아숨쉬는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를 찍을때가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라니, 스물아홉에 저런 노인의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게 느껴진다.
라탈랑트라는 배의 선장과 결혼하는 여자와 선장의 결혼식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주로 배위에서의 일상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선장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어딘가 서투르고 삐지면 화를 내는 연약한 인물이다. 아내는 선장을 사랑하긴 하지만 새로운 세계, 파리,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있는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노인과 어린 선원이 있다. 둘은 이 영화의 감초같은 역할인데 비중이 크고, 유머 연기도 일상적이고 사실적이라 느껴질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GV 시간에 홍상수 감독은 수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그의 팬들이 그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듣고 있노라면, 한국영화 관객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싶을 정도이다. 물론 개중에는 이상한 질문도 있었고, 엉뚱한 얘기도 있었다. 또 알고보면 다들 영화인이고 감독 지망생들인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겐 오늘 GV 시간이 참 유익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신념, 철학을 들으며 다시 한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2학기 연출수업때의 교수님들의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었고, 영화에 대한 진정성과 애정이 넘쳐났다. 그는 요즘 영화를 안본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 영화라는걸 공부할때 오래된 고전영화들만 보았고, 그중에서 자기와 맞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영화라는 것이 형식을 너무 치중하고 테크닉에 열중하고 집착하면 내용에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게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때문에 그가 소재나 촬영지, 주인공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 같다.
작년에 촬영을 마치고 올해 개봉 예정인 그의 신작 <밤과 낮>이 기대된다. 굳이 그가 이제 더 새로워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하던대로 찍으면서 하나씩 다른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방식이 맘에 든다. 아주 미묘하고 세세하며, 치밀한 인간의 모순적이고 치졸한 감정 말이다. 물론 나는 그처럼 영화를 찍진 않을 것 같다. 내겐 나의 방식이 있으니까.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도피하거나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다.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지식인계급 아닌,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