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빌제 세일란의 <기후>

누리 빌제 세일란의 <기후>

제일란의 영화 <기후>를 보았다. 지독하고 참혹한 내면의 풍경으로 가득한 영화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극단적인 풀샷이 교차하면서 '기후'와 '인간'의 표정을 중첩시킨다. 요컨대 기후도 공간일 수 있을까? 덥거나 춥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씨 변화 따위도 하나의 공간이라면, 영화 <기후>의 시간-풍경들은 한 인간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가히 유물론적으로 재구성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 자연 풍경의 유물론이 이별하는 남자와 여자의 '역사'로 유비된다. 이런 영화 처음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토니오니와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리긴 했지만, 제일란은 영화 제목 그대로 '기후'에 촛점을 맞추었으니 엄밀히 따져서 이런 영화는 처음 본거나 다름없다.

이사(누리 빌게 세일란)는 연인과 여행 도중 갑자기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에 비해 너무 젊다는 게 그 이유다. 이스탄불로 돌아와 혼자 ㅅ긴을 보내던 이사는 옛 연인 세랍을 찾아가 섹스한다. 겨울이 되자 이사는 헤어진 연인이 일하고 있는 동부로 휴가를 간다. 그는 자신이 변했다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겠으니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마지막 씬은 미치도록 좋았는데, 미치도록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 우울을 더 극대화시키고 곪고 곪던 살갗의 상처를 팡하고 터뜨려주었다. 괴로운 영화이다. 하루종일 울고 싶다. 해결할 수 없다. 시간, 그리고 죽을힘을 다하는 삶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지쳐있고 노력하려는 나 자신조차도 혐오한다. 이거 어쩌지? 유일하게 맘에 드는 건 글이 이렇게 지랄맞게 써지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듯 잉잉대는 모든 애상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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