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라투
낮에는 오랜만에 윤영을, 저녁때는 세희와 승환, 유필을 만났다. 우리는 충무로의 어떤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남산 한옥마을로 향했다. 충무로 국제영화제의 야외상영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펼쳐진다.
오늘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1922년작 괴기영화 <노스페라투>가 상영하는 날이었다. 이 영화는 1979년(?)에 베르너 헤어조크가 다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헤어조크의 영화가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물론 1922년의 단색 무성영화와 1979년에 만들어진 미학적 성취도가 뛰어난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남산 한옥마을의 공기를 필름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들이 채워주었다. 스크린이 설치된 무대 앞의 300여석의 자리에는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들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도 가득채워졌다. 어떤 영화를 볼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객석을 메운 것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독일에서온 '무성영화' 전문 연주자 귄터 부흐발드씨의 피아노 연주도 시작되었다. 그랜드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자유자제로 교체하며 장면장면, 씬바이씬을 넘나드는 연주자의 연주 솜씨는 정말 뛰어났고, 이 86년된 오래된 영화를 너무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다.
<노스페라투>는 20년대의 여느 표현주의 영화들이 그렇듯 괴기스러운 배우들의 표정, 과장된 연기, 왜곡된 형태의 무대들도 채워져있다. 게다가 연극적 전개도 눈에 띄는 특이점이다. 이런 점들은 당시 독일 연극계에서 옮겨온 연극 연기자들, 그리고 표현주의가 지배하던 독일 미술계에서 옮겨온 독일의 무대미술가들이 지배했던 독일영화계의 풍토를 잘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20년대 독일영화에서만 느끼고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필름 안에 창조해냈다. 내가 본 1920년대 독일 영화는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이나 <푸른 천사>, <마지막 웃음>, 그리고 오늘의 <노스페라투>가 전부이지만, 이들은 전체적으로 어떤 일관성을 보이는데 당시 독일의 정치경제적 암흑기를 표면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다들 전염병이 걸리고 죽거나 죽이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면서 그 환상적인 바이올린 연주도 끝났고, 우리가 느낀 새로운 경험의 장도 막을 내렸다. 느닷없이 파졸리니가 말한바, "영화는 인간의 삶을 세 배로 연장시켜주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무임으로 1920년대의 트란실바니아를 다녀온 것이다. 고전영화는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묘한 기예를 전달해주는 듯하다.
영화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전제덕과 그 밴드의 멋진 공연이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들을 보다 더 흥분되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하모니카 연주는 공기의 통로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열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신나는 곡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세희는 여지없이 펄쩍펄쩍 춤을 추었다. 승환이와 나도 덩달아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