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유령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는 유령은 몇년이 흘러야 나를 떠날것인지. 내가 그때 이후로도 한참이 지났을때, 비관적인 감상에 젖어서, 석관동 단골 술집에서 재형이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실때, 아주 한동안 서로 말이 없어서 조용해졌을때, 그땐, 아마 1,2년쯤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그랬는데, 왜 너 유령은 아직도 내 귓가에 악몽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하고 머물고 있는지. 왜 네 껍데기는 아름다운 모습인지, 왜. 그렇다면 왜 아직도 가면을 벗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그 가면 안에 또 다른 껍데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젝의 말처럼 그 가면이 바로 대상인 너의 진짜 모습인지.

왜, 왜, 왜, 오래된 레퍼토리는 바뀌지 않는지, 왜 그것은 어김없이 반복되는 지, 결정적인 순간을 주저하게 만드는지, 수천번 다짐한 다음에도 또 n+1번째 망설임에 직면케 하는지, 만약 다시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내 앞에 서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래도 이쯤이면 충분히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니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언젠가 나를 놓아줄 것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이것을 즐길수도 있겠건만, 나는 미래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네가 아닌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하고 대비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내가, 특히나 내 주위를 맴도는 이 악몽같이 아름다운 유령에 대해서만큼은.

그러니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이냐.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었음에도 존재했었던 것처럼 행세하는 유령, 이 세상에서 오직 내 목덜미 뒤에 남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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