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을 둘러싼 책들
지난 봄 이사온 청운동집 2층에 위치한 내 방은 그 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만큼 아담하고 효율적으로 변한 것 같다. 나는 이런 효율성이 맘에 든다. 이런 효율성은 내 가슴 속의 텅 빈 느낌을 소멸시켜줄뿐만 아니라, 가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방 안에서의 생활을 더 압축적이고, 진실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부모님은 내 방 벽의 두 면을 책장으로 가득 채워주었는데, 아버지가 직접 용접하고 선반 목재를 놓은 그 책장 가득 빼곡하게 꽂힌 책들 덕분에 나를 받쳐주는 든든한 에너지가 온 몸으로 느껴진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있을때, 작은 쇼파에 앉아있을때, 2.5층 쯤에 있는 침대 위에 누워있을때, 책 속으로 들어간 나의 든든하고 위대한 후원자들이 -- 요컨대, 발자크, 플로뵈르,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조이스, 밀란 쿤데라, 앙드레 말로, 프루스트, 지젝, 존 버거, 라캉, 맑스, 김훈, 김연수 등등 --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며 지지해주고 있다는 기분. 이 온몸의 피부 모공들 속으로 스며드는 이 느낌!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인문학과 예술서적으로만 빼곡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도서관을 좋아하고, 또 내 방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 등 뒤쪽, 그러니까 북쪽 방향의 책장 맨 위칸은 일본과 이태리의 디자인 잡지들과 미술사 서적으로 채워져있다. 이 책들은 아버지가 오래전에 구독하거나 구매한 책들이고 나로서는 잘 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맨 위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그 아래 두번째 칸은 한국의 현대문학 서적들이 꽂혀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이상문학상 작품집 몇 권, <기형도 전집>, <기형도 산문집>을 비롯해 기형도 시집 두 권, 그리고 김연수, 김훈, 김경욱, 서하진, 황석영의 소설들, 그리고 10여권의 시집들. 나는 이 중에서도 <기형도 전집>과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가장 좋아한다. 김훈이나 황석영의 다른 소설들도 꽤나 벅찬 기분으로 읽었으나 황석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정을 붙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의 정치적인 술수들에 지쳐버렸다. 그는 더 이상 <바리데기>나 <개밥바라기별> 이상으로는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개밥바라기별>은 시덥잖았으나 <바리데기>정도라면 볼만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기형도는 역시나 '기형도'이다. 그것은 더 이상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한 비운의 작가라는 이름 하나로 남기보다는, 어떤 시대적 정서, 감정, 우울, 콘텍스트성, 문학적 폭발 그 자체이다. 올해 초 기형도에 다시 빠져서 그의 시집들을 읽고 또 읽은 기억이 나는데, 누군가의 지적에 따라 그것을 개인으로 침잠해버리고마는 우울의 정서에 활용하는 자위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거의 펼쳐보지도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형도의 증폭하는 카테고리들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는다. 김연수는 오늘날 가장 유의미하게 현존하는 한국문학의 카테고리라 믿는다. 내가 볼때 우리는 '김애란'보다는 '김연수'에 더 많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애란은 현재적이며 현실적인, 그러면서 20대들의 일상과 고뇌에 착목해있긴 하지만,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몰라 끊임없이 방황하고있을뿐이라는 점에서 폭발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요컨대, 여기에서 더 나아가고 폭발하려면 다음 계단을 밟아야하는 것인데, 그녀는 정확히 우리 세대가 현재 멈춰있는 것처럼 그 자리를 계속 맴돌고만 있다. 아마 곧 그 좌절이 표면화되고말 것이다. 김연수는, 참으로 '잘' 읽어야하는데, 그를 기존의 좌절한 청춘들이 거친 배설적 회상들처럼 읽히게 해서는 절대 안되며, 공지영이나 황지우 등이 벌인 제사와는 절대 다르며, 또 김경욱 등이 보여준 엘리트 운동권의 찌질함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유하는 그의 소설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함께 가리키며 읽어야 한다. 김연수가 지나간 과거들에 대해 계속 언급하고 이야기하며 그 유령들을 소환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안고있는 극복불가능한 '간극'의 문제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전 세대로부터 그때 그들이 극복하거나 떨쳐내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우울한 청춘들의 슬픔 따위를 떠안고말았을 뿐만 아니라, 좌절된 슬로건과 찢긴 깃발을 대체 이걸 어디가서 흔들어야할지도 모르는채 앙상한 깃대만 전달받고말았다. 그렇다면 그때 멍하게 벙찐 채로 안겨졌던 그 죽음의 기억들에 대해 다시 괴롭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에 대한 망각을 획책하고있는 것인지.

그 아래 칸에는 각종 인문학, 미학 서적들이 꽂혀있다. <성호사설>(성호 이익)이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같은 고전서적도 있고, <인간사색>이나 <모더니티의 다섯얼굴>,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리얼리즘>이나 <문화사회학>, <비주얼컬쳐>, <반체제예술>같은 미학 서적도 있다. 그리고 롤랑 바르뜨의 책 몇 권과 서사학에 관한 책들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두꺼운 책 <그리스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임철규)이다. 그리스비극에 대한 연구서를 몇 권 읽어봤지만, 이 책처럼 일목요연하고 총괄적이며 체계적인 책은 보지 못했다. 그리스비극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은 필독이다.
그 아래부터 세 칸에 걸쳐서는 서양 문학 서적들이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민음사 세계고전문학전집 10여권, 알베르 까뮈 전집, 앙드레 말로 소설 <인간의 조건>, <정복자>, <왕도로 가는 길> 등이 있고, 마야꼬프스키의 시집들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도 있다. 이 책들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특히 내가 좋아한다. 모두 위대한 걸작들이며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가슴 떨리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카프카의 소설 <성>, <소송>,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마르케스의 소설 네 권이다. 그러나 다른 모두가 한때는 가장 좋아한다고 호언장담하며 말하던 작가들이다. 작년 가을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열심히 읽을땐 도스토예프스키가 최고라고 말했고, 한동안 앙드레 말로의 아시아 3부작을 읽을땐 앙드레 말로가 이미 50년 전에 지금 우리가 처한 곤경들에 대해 모두 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카프카 타령을 주구장창하는 건 아마도 내가 지금 카프카의 소설을 계속 읽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침대에서 내려다본 북쪽 방향 책장이다. 맨 아래의 두 줄에는 영화잡지들로 가득하다. 지난 2004년 즈음부터 산 것들인데 씨네21만 족히 100여권은 되는 것 같다. 어쩌다 이리 계속 사댔는지… 버리지도 못하고 저렇게 쌓아두었다. 책이 더 많아지면 북쪽 통창을 가려야하는데, 그럼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다.

이 집은 아마 골목에서 가장 작은 집 중 하나일 것이다. 내 방은 2층인데, 지금은 저 문을 열고 나오면 아주 작아서 겨우 쇼파 하나 놓을 정도의 무허가 테라스가 있다. 올가을에 다시 휴가를 나오면 저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골목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것이다.

방의 동쪽 면이다. 열려있는 저 문이 테라스로 나가는 문. 그리고 그 옆은 복층에 있는 다락방같은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밑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움직일 수 있다. 테라스로 나가려면 저걸 1미터 정도 옮겨야 한다. 그리고 또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올라갈땐 저걸 다시 제자리에 옮겨야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그렇지만 참 재밌게 생긴 이동형 계단이다. 계단 속엔 옷도 걸어놓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 테라스 문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책장이 빼곡하게 채워져있는데, 왼쪽에는 예술서적, 사회과학서적들이고, 오른쪽엔 철학, 정신분석학, 영화이론 서적, DVD들이다. 맨 위에는 라이프지에서 나온 세계문명에 대한 백과사전, 그리고 중앙일보에서 나온 서양음악사 백과사전이 있다. 그 아래에는 DVD가 있는데 30개가 채 안된다. 최근에 히치콕과 채플린의 콜렉션, 그리고 한때 좋아했던 도브첸코의 영화들이 있는데 한정판 DVD 왕창 사놓는 애호가들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다. 그 오른쪽과 아래칸에는 라캉과 지젝의 책들과 미술, 건축 서적들, 영화이론서적들, 영화 기술서적들이 있는데 전부 좋아하는 책들이다. 그 중에서도 <건축이란 무엇인가>(승효상 외)는 승효상이 말하는 '빈자의 미학'으로서의 건축 조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자크 라캉 세미나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주요 개념>,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의 <시차적 관점>, <삐딱하게 보기>,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띄워줄 훌륭한 무기들이다. 이 중에서도 라캉의 <세미나11>과 지젝의 <시차적 관점>은 이 시대의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존 버거의 , , 수잔 손탁의 <사진이야기>와 몇 권의 사진이론 서적들, 영화이론서, 영화사 서적들이 있다.

그 아래칸에는 철학책들, 문학이론서들로 채워져있다. 발터 벤야민, 주디스 버틀러, 지젝, 피카르트,, 사르트르 등등. 문학이론서로는 <대화적 상상력>,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론입문>(테리 이글턴), <스토리텔링의 비밀>, <문장강화>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문학적 기억의 탄생>, <리얼리즘의 역사와 이론>, <한국 근대문예비평의 논리> 등이 있다.

책상. 컴퓨터와 프린터 뿐이다. 지금 여기에 앉아있다. 밤12시50분. 캄캄한 청운동 골목에는 벌레 우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얼마전 산 500GB짜리 외장하드에는 영화들이 가득 차있다.
내 방 안의 책 베스트 50
- <시차적 관점>, 슬라보예 지젝 / 마티
-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슬라보예 지젝
- , John Berger / Penguin books
- <자크 라캉 세미나11>, 자크 라캉 / 새물결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外>, 발터 벤야민 / 도서출판 길
-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 도서출판 길
-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의 삶과 문학>, 박해현,성석제,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 문학과지성사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 문학동네
- <케테 콜비츠 평전>, 카테리네 크라머 / 실천문학사
- <반체제 예술>, 사카자키 오츠로오 / 과학과사상
- <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 한길사
-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 지만지
- <마야코프스키 선집>,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 열린책들
-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상,하>, 도스토예프스키 / 열린책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민음사
- <농담>, 밀란 쿤데라 / 민음사
- <파리의 우울>, 샤를 보들레르 / 민음사
- <악의 꽃>, 샤를 보들레르 / 문학과지성사
- <벌거벗은 내 마음>, 샤를 보들레르 / 문학과지성사
- <검찰관>, 고골 / 민음사
-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 창작과비평사
- <말>, 장 폴 샤르트르 / 민음사
- <구토>, 장 폴 샤르트르 / 문예출판사
-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 민음사
- <사라진느>, 오노레 드 발자크 / 문학과지성사
- <골짜기의 백합>, 오노레 드 발자크 / 홍신출판사
- <마담 보봐리>, 플로뵈르 / 민음사
-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外 / 문예출판사
- <이방인>, <시지프신화>, <페스트>, 알베르 까뮈 / 책세상
- <우리들>, 예브게니 자마찐 / 열린책들
-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뿌쉬낀 / 열린책들
- <백년동안의 고독1,2>, 가르시아 마르케스 / 민음사
- <두 친구>, 기 드 모파상 / 문학과지성사
-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 창작과비평사
- <문학적 기억의 탄생>, 변학수 / 열린책들
- <리얼리즘의 역사와 이론>, 스테판 코올 / 미래사
-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에티엔 발리바르 / 이론
- <역사유물론 연구>, 에티엔 발리바르
- <자본주의 역사 강의>, 백승욱 / 그린비
- <문화대혁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백승욱 / 살림
- <옥스퍼드 세계영화사>, 열린책들
-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 돌베게
- <예수전>, 김규항 / 돌베게
- <성>, <소송>, 프란츠 카프카 / 펭귄클래식코리아
- <오노레 드미에>, 박홍규 / 소나무
- <건축이란 무엇인가>, 승효상 外 / 열화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