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2007, 미국,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윌스미스 주연

2012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공기 전체를 전염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 생물학자이자 대령 장교였던 것으로 보이는 윌스미스는 자신의 애완견과 함께 맨하탄가에 거의 혼자 살아남은 남자다. 전염되면 좀비가 되는데 그는 3년간 혼자 좀비들과 싸우며 면역체를 개발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다. 매일매일 AM주파수로 생존자를 찾으며 말이다.

요즘 미국 영화 분류법에 따라 분류한다면, 이 영화 역시 포스트9.11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황폐화된 세계는 곧 '미국'으로 치환되고, 미국이 곧 이 세계의 모든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세계관은 항상 이런 식이다. 최근의 <마이클 클레이튼>이나 <시리아나>, <킹덤>같은 영화들이 포스트9.11 미국 사회의 부폐하고 추악한 단면을 드러내는 부류의 강한 정치색을 지녔다면, 이 영화는 노골적인 오락영화답게 미국만의 전설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것에 치중한다. 영화에서 윌스미스의 적인 좀비들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다만 바이러스 면역체를 만든다면, 인간으로 된다는 실낫같은 희망은 있다. 윌스미스 한 명이 영화 전체, 전세계를 끌어가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의 감정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두려움, 외로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이 대재앙 이후 3년이 지난 그의 모습이다.

스릴과 빠른 전개, 박진감 이런 것들도 잘 녹아있어서 SF 오락영화로 손색없어 보인다. 블록버스터이지만 블록버스터처럼 느껴지지 않고, 좀비영화이지만 마니아적 취향도 아니다. 영락없는 대중영화다. 로버트 네빌(윌스미스 분)은 여느 좀비 마니아 영화들의 주인공처럼 무조건 암울하지도 않은 채 작은 희망을 지니고 있어 라디오 송신도 하고 면역체 개발도 한다. 마네킹들에게라도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슈렉의 대사들을 무작정 외움으로서 공동체-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아닌 생물체 좀비가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사회의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무려 27개 작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SF작가 리차드 매디슨 Richard Matheson의 동명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같은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지상 최후의 사나이>(1964), <오메가 맨>(1971)같은 작품들보다 훨씬 잘 만들어졌다고 한다. 슈퍼영웅으로서의 로버트 네빌(월스미스 분)의 캐릭터가 잘 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세계 제국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도시 '뉴욕'에 홀로 남은 로버트는 곧 '미국'이다.

영화의 후반부, 종결부는 좀 깨는 면이 있다. 영화는 네빌 1인의 심리를 따라가며 사회 속에 고독한 개인의 모습을 좀비들과 최후의 1인이라는 이미지로 은유적으로 보여주다가, 갑자기 종교영화로 돌변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위해 죽었듯이 윌 스미스도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한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지난 3년을 그렇게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며 잘 버텨온 그가 순식간의 상황에서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한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급작스러운 죽음과 자기 희생은 종교적인 신파 냄새를 물씬 풍긴다. 미국이라는 기독교국가의 살벌한 탄생을 알리며 국가적 정체성을 그럴듯하게 치장하듯 윌 스미스의 도움을 받아 백신을 전해 받은 소녀와 그녀의 어린 동생은 버몬트에 있다는 인류의 마지막 마을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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