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소설 “퀴즈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몇권 정도 읽다가 막간을 이용해서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었다.
구조적인 짜임새가 안정적이고 읽기에 편했다. 그러나 그 짜임새의 안정성이 너무 잘 인식되어서, 소설의 열려있는 결말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귀속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초반부에서는 김영하 특유의 재기있는 감정 묘사가 캐릭터를 잘 살려주었다. 이 힘이 바로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해주는 힘이다. 그러나 점점 힘에 부쳐갔다.
게다가 위기부 이후에 다다르는 경기도 또는 강원도 북부 어딘가의 "회사"는 그 몽환성이 노리는 몇가지 노림수들에도 불구하고 너무 도식성을 잘 노출시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서사에 집중한 이 소설로서는 약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면모가 있었다.
소설이 건드리는 재료들은 이 시대를 스케치하기에 충분하기에 적절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얇은 스케치가 그 어떤 무의식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주인공은 어영부영, 뼈아프게 성장하다가 안정적인 길로 접어들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건 느낌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사를 느낌으로 읽지 뭐로 읽겠는가. 시대가 불러일으키는 환기가 소설에게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현실과 시대에 대해 말하는 기특한 의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이다. 함정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