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값

나에게 "글값"은 여전히 부끄러운 문제이다. 그래서 난 말하지 않고, 말한 적도 없다. 너무 실용주의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글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는 다분히 필요한 글이냐 아니냐에 있을 뿐이고, 글의 값은 주는쪽이 풍족하냐 아니냐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얼마 전에는 원고료 대신 쌀을 보내주는 매체에 두 달에 한 번 짧은 글 기고를 시작했는데, 그 월간지의 가치가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이래로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글값 이야기를 한다. 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 써서 반찬값, 우유값, 교통카드 값 버는 사람들이 공중에게 글값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것이 설령 위선에 가까운 것일지언정) 깊은, 혹은 어느 정도는 신경증적인 고뇌의 흔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정직하려면, (이건 또 너무 윤리주의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마비된 사회에서의 대항 혹은 대안적인 주체의 재생산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좋은 글을 써야 독자도 있는 것이지만, 독자라는 공동체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공동체의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청탁한 쪽의 현실이 명백하게 글값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러한 현실을 다르게 조직해야 할 과제는 정치인들만의 과제도, 사회운동가들만의 것도, 청탁하는 쪽만의 영업 확장 과제도 아니다. 글 쓰는 사람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들 자신이 뼈저리게 알겠지만, 2023년 현재 한국 사회의 '독자'라는 공동체는 거의 붕괴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너무 낡았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그분들의 나이브한 고민이 더 낡게 느껴진다. 사회에 대해 말하는 글이라면, 부자에게도 좋고 노동자계급에게도 좋은 글 같은 건 거의 없지 않을까. 글값 이야기의 결론이 "자본가 만세"이면 너무 쪽팔리지 않나.

https://briarpatchmagazine.com/articles/view/against-a-culture-of-paid-activ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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