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들의 무게
어제는 하루 온종일 비가 내렸다. 공기 가득 서려있던 먼지들이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쓸려 지상으로 쌓이고 쌓였다. 먼지들은 배수로를 타고 흘러가다가 검고 녹슬은 파이프를 따라 저수지쪽으로 흘러갔지만, 다행히도 솔잎이 수북 끼어있는 배수로 사이사이에 걸려 막히고 말았다. 이제 먼지들은 우리의 몫이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는 해가 뜨기 무섭게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구름 뒤에 가려진 태양이 좀체 지상을 비추지 않았다.
바로 조금전인 저녁 일곱시까지 나는, 기형도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에 수록된 평론들과 <기형도전집>의 시들을 미친듯이 읽었다. 저녁이 올수록 뜨거워진 배꼽이 춤을 추듯 뛰어다니다가 심장을 자극했고, 숨이 막힐것만 같은 무언가가 내 속에서 불규칙적인 춤을 추어댔다. 나는 어찌할줄도 모른체 가만히 앉아있었다. 책 속의 글자들은 제멋대로 흘러가는데 내 두 눈은 지난날 내 속의 헛방질들과 역겨운 입술을 마구 비웃는데, 나는 비겁하게 지리산 끄트머리 아래에 쳐박혀 숨어있다. 그/녀들은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지퍼로 굳게 잠근 입술 실룩거리며 감상주의에 빠진, 심지어 흔해빠지기까지한, 386들처럼 울상 짓고 책만 읽고 있다. 책이 무슨 도피처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뱃살을 움켜쥐었다. 한 손에 푹 잡히는 내 뱃살.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기다렸다, 이런 구역질의 순간. 지난 목요일부터 나는 모조리 토해버리고 싶은 감정 주체할 수 없었던 것. 이길준이라는 어떤 이는 철창 안에서도 자유로운 감정 속에서 오직 자기만의 것이 될수있게 된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제멋대로 뛰어다니면서도 나도 모르는 말들을 내뿜었다. 그 순간부터 속에서 부글거리는 물질들이 끓어오르는데, 그런데도토사물은나올듯말듯나오지않아뇌속으로흘러가버렸는지아님대장안에끽끽들어차밤새도록울고있는지.
나는 바로 운동화와 빨간색 츄리닝 반바지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들이 층층이 쌓여 시소처럼 움직였다. 아쉽게도 하늘에는 달도, 태양도 없었다. 지표 없는 세계의 바로 아래.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비겁하고 불쌍한 중년 아저씨의 그것처럼 출렁이는 뱃살들이여. 얼마나 달리면 지방들이 모조리 소멸될건가.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네바퀴 …… 열한바퀴일때 연대장이 탄 검은색 1호차가 온다. 충. 성. 그리고 다시 나는 열두바퀴, 열세바퀴 …… 열아홉바퀴, 스무바퀴. 어느새 구름은 하늘 가득. 하늘은 어둑해지고 저수지 너무 산등성이 뒤로 해는 넘어갔다. 퇴근하던 취사병이 무슨 헛지랄이냐고 웃는다.
뱃살들은 줄었는가. 샤워실에서 홀로 차디찬 물에 땀을 씻어내리며 묻는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이 뱃살 다 빠질즈음 내 기억의 어두운 무게도 사그러지게 될까. 회색 구름들은 두껍게 두껍게 쌓여서 내일의 비를 예비하고있다. 강하하는 먼지의 무게를 짓누르는 잔인한 구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