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단편소설 「길」

이른 아침 여덞시에 오른 기차. 서울로 오면서 공지영의 단편들을 모은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읽었다. 몇년 전에는 공지영 소설들의 소극성과 염세주의에 질려 제대로 읽지도 않고는 폄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스물여섯, 오늘 다시 읽으며, 다른 감수성으로 다른 소통을 얻게 되었다.

특히나 <길>은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소설이었다. 다른 단편들과는 다른 유달리 긍정적이고 희망을 엿보게 해주는 결말이 맘에 들었으며, 그 안에서 부부의 서로 다른 감정의 세세한 묘사들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느새 나는 두 부부가 3년전에 떠나보낸 죽은 아들의 입장이 되어서 두 부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마치 내 삶의 다른 차원의 면모들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심장이 쉴새없이 두근거렸다.

이 소설은 소통을 잃고 해후를 포기한, 인생의 적막함과 아들과의 이별 속에서 상처받은 두 부부의 이야기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이 중년 부부는 고다르의 영화들에서처럼 남성의 언어, 여성의 언어로 서로를 평가하고 구획짓는다. 그러나 완도의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절벽 위의 염소들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되찾는다. 염소는 징검다리이자, 영혼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치 죽은 아들처럼, 그리고 풀 한포기 제대로 나지 않은 절벽가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염소 세 마리처럼 느껴진다. 신은 염소의 눈으로,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이상은 죽은 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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