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과 냉소

대통령과 가깝다는 천공스승인지 뭔지 하는 머저리와 그보다 좀 더 머저리 같아 보이는 대통령, 그리고 그 대통령 옆에 기생하며 권력놀이는 하는 극우주의자들, 겸손이 힘들다는 정치무당, 정치무당의 굿판에 종속된 386세대의 일부 자유주의 엘리트들, 인플루언서를 만들어 추종하는 것만이 자기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정치 좀비들, 그런 모습을 비아냥거리는 것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보이는 냉소주의자들, 양자를 각각 비난하다가 자신만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어느 한쪽에 영웅주의적으로 의탁하겠다고 선언하는 돈키호테 같은 지식인들… 이 모두가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경멸감을 곱씹는 것을 멈추지 못하겠다. 대신 경멸을 냉소로 귀결시키지 않고, 경멸감을 경멸 그 자체로 불태워버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헐리우드 좀비물에서 '좀비'는 이성이 완전히 중지되어 있고, 씹어먹을 피와 살을 찾아 이리저리 부유하는 시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집단을 구성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헐뜯을 또 다른 대상을 찾아다닌다. 오늘날 한국 정치와 인터넷의 정치세계는 흡사 좀비물과 같다. 살아 있는 다른 존재를 물어뜯는 것을 유일한 생리로 여기고, 이 본능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것을 정치의 효능으로 여긴다. 상대를 악마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여기에는 어떤 표준도, 규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세계의 냉소주의자들은 두 개의 정치진영이 모두 "진영 논리에 사로잡혔다"고 규정하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이들도 두 가지 정치비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해버리고, 그밖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냉소해버린다는 점에서 양 진영의 좀비정치에 철저히 복무한다고 볼 수 있다. 양 진영의 열성적인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양 진영을 싸잡아 비난하되 다른 공간을 부정해버리는 관객들 역시 이 생태계의 구성물이다.

이 생태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완전한 비즈니스 동물이 되어 삶을 통째로 투기의 대상으로 몰아넣는 것. 혹은 이 한심한 놀이에 동참하지 않고, 대신 지금 미약해보이는 대안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 후자만이 "미래"라는 단어를 상상할 수 있고, 그 미래의 가능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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