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예술을"?
나는 종종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예술을 '감히' 돈의 가치로 평가하려는것이냐?"고 반발하며 대단히 일시적이고 방어적으로 신자유주의 교육구조조정에 맞설때, 이상한 불편함을 느낀다. 얼마전 추계예술대가 교육과학부의 괴이한 양적 평가기준에 의해 '부실대학 판정'을 받았을때의 반발이 그런 아이러니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대부분의 뉘앙스들은 마치 예술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표준화된 양적 평가기준으로 '합리적으로' 대학을 위계화시키는건 정당한 일인것만 같은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게 대체 무슨 패배적인 알리바이인가? 이런 수세적이고 패배적이며 '인간주의적'인 입장이 대학의 위계화 구조를 정당화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나?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고작 자그마한 예술학교의 학생이나 교수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외쳤어야 했다. "우리는 자본과 국가가 강제하는 모든 대학평가 기준의 도입 그 자체에 반대한다. 자본축적에 유용한 노동자 양성 목적으로서의 대학 서열화는 완전히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에 예술학교에 대한 평가 역시도 완전히 거부한다."라고 말이다.
소위 말하는 부실이나 부패는 자본축적이라는 하나의 지향점만을 갖는 저런 양적 기준들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대학 내 모든 구성원들의 민주주의가 복원될때 제대로 구현될 수 있으며, 과도기적으로는 부패 재단에 대한 철저하고 공개적인 '시민 감사'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대학에게 필요한 것은 순전히 질적인 층위에서의 논쟁과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이다. 지금의 자본축적 구조와 완전하게 맞닿아있는 대학 교육제도를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는 한, 구조적으로 '좋은 대학 교육'이란 존재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올해 한예종 총학생회의 총장 비판의 한 가닥은 분명 잘못되었으며, 오히려 '신자유주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총장이 취업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 난 오히려 거꾸로 질문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졸업을 해도 먹고 살기 힘든 지금의 절대적인 현실 속에서 '어떤 예술이 필요한가'에 대해 질문했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