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와 도시-공간

영화에서 공간은 또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인물들의 관계, 서사과 어우러져 공간 그 자체의 성격과 감정을 갖고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왜 또 하나의 예술로서 취급될 수 있는 지를 설명해주는 주된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공간이 갖는 구조, 성격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중요하며, 서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등장하는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 이에 대해 망각하고 있는 경우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내러티브에 집중하는 영화는 인물과 인물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의 스펙타클로만 화면을 가득채우고 관객을 현혹시킨다. 관객은 사건과 사건의 단순한 인과관계에 주목한 나머지 오직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심상을 놓치게 되고,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마는 것이다. 공간을 잃어버린 수많은 영화들에게 애도를.
공간을 영화의 전면에 등장시켜 공간의 힘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영화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나는 이런 공간이 주요하게 환기되는 영화들 중에서도 도시 공간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색칠하는 영화들에 유난히도 매력을 느낀다. 자끄 리베트의 데뷔작 <파리는 우리의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파리라는 공간이 갖는 피폐성과 인간관계의 단절, 폐쇄성에 대해 스릴러적 전개의 힘을 갖고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자끄 리베트는 파리라는 도시를 영화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도시 공간 자체를 주제화시켰다. 전후세대가 갖는 상실감과 좌절, 방황을 도시 공간이라는 제3의 캐릭터와 함께 그려낸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을 이끌어내 현대 영화의 전범을 만들어낸 로셀리니의 영화들도 도시 공간의 영화를 그려낸 감독들 중 하나이다. <무방비도시>나 <이탈리아 여행>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며, 이런 훌륭한 영화적 전통은 이후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등에 의해서 지속적이고 발전적으로 계승되었으며, 누벨바그 세대에게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편 우리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대해 한결같이 "뉴욕에서의 삶"이라는 일정한 주제를 갖고 이어져온 수많은 영화들을 알고 있다. 우디 알렌의 뉴욕 영화들은 우디 알렌만의 시각으로 코스모폴리탄 뉴욕에서의 삶을 그려내며,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은 뉴욕 뒷골목의 어둡고 습기찬 현실에 대해 그려왔다. 이런 것들은 쌓이고 쌓여 전설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장르적 규범같은 것마저 만들어서 뉴욕-영화라는 카테고리를 형성해오기도 했다. 이처럼 파리, 로마, 뉴욕에게는 도시 공간를 주제로 승격시킨 영화 카테고리로서 클래식 지위의 현전 목록을 두둑하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 그것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쿄, 라스베가스, 홍콩, 타이베이 등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에는 왕가위나 오우삼, 그리고 오늘날에는 두기봉이 만들고있는 느와르 영화들이, 그리고 타이베이에는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등에 의해 만들어진 모던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대도시가 자기 이름을 브랜드화하는 상품적 전략과 어우러져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기획적 의도는 다분히 관광상품으로서의 도시 기획을 설정해놓은 전략하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로 인해 도시 공간을 스케치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다. <사랑해, 파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이번에 개봉한 <도쿄!>도 그 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도쿄!>에는 오늘날 일종의 두터운 마니아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비할리우드 국가들의 전세계적 스타감독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이름도 찬란한(?) 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 그리고 한국의 대표 감독 봉준호가 그 주인공이다. 나는 오늘 아침 조조로 <도쿄!>를 보았고, 봉준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또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이 감정을 잊고싶지 않아서 외박 복귀하자마자 이렇게 글을 쓴다.
<도쿄!>에는 30~40분의 단편 세 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겨있다. 그 중 10여년만에 새 작품을 찍은 레오 까락스는 <Merde>로 재기(?)넘치고 강력한 포스로 재등장하셨다. 이 영화에는 레오 까락스의 분신 드니 라방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그는 천재적 연기로서 하수구에 사는 광인을 연기한다. 괴상망층한 행동과 파괴적인 본능으로서 도쿄라는 도시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여기에는 도쿄가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그 파괴적 역사, 파시즘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대중이데올로기, 윤리 등 도쿄의 숨기고 싶은 것들이 레오 까락스만의 시각으로 까발려지고 있다. 그 재기에 짐짓 놀라서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이다. 또한 이는 도쿄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며, 레오 까락스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조소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광인이라도 된 것처럼 제멋대로 인간들의 언어를 무시하고 파괴한다. 그리고 B영화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결말부의 자막 "다음에는 뉴욕!"이라는 말로 도시 사회를 향한 선전포고를 날리고 있다. 가히 레오 까락스답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10여년만의 연출작으로는 무거운 주제에 얹힌 흥미롭고 가벼운 출발이다.
상상력과 장난끼의 에디터 미셸 공드리는 고독과 관계의 단절에 빠진 도쿄의 풍경을 외부인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레오 까락스보다는 보다 가까운 시선이다. 주인공은 merde처럼 외국인이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 온 일본인이다. 그녀는 도쿄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삶의 방식은 촘촘하게 밀집되어 정밀하고 빠른 행동을 요구하는 도쿄라는 도시 공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소외받아 고독함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가슴이 뻥뚫려버리고 급기야 방황하다가 나무 의자로 변신해버린다. 여기에 미셸 공드리다운 상상력 가득한 소재가 서사에 힘을 부여하고, 우울한 도시에 판타지성 강한 긍정으로 대응하는 그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봉준호가 연출한 <흔들리는 도쿄>는 세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세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것처럼 빈틈없이 30분을 가득채운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 도쿄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 사는 일본인들의 삶, 이데올로기를 '히키코모리'라는 정신질환 현상을 소재삼아 유머러스하고 신랄하게 파고든다. 카가와 데루유키와 아오이 유우의 연기는 정말 캐릭터에 너무 꼭 맞을 정도로 적절하게 연출되어있으며, 모든 카메라웤, 앵글, 조명, 미술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히키코모리가 11년째 갇혀 지낸 작은 집을 담은 카메라워킹은 교과서적으로 뛰어나게 실내공간을 담았다고 할 수 있으며, 텅빈 도쿄 시내의 전경을 잡고 또 다시 허겁지겁 사람을 찾아 뛰어다니는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워킹의 조합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빛은 또 어떤가. 이 영화는 공간과 빛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영화계의 뛰어난 조명감독이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전방위적으로 자기 실력을 맘껏 뽐낸듯 서사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에 따른 빛의 변화가 가히 예술적이다. 봉준호는 집에 갇혀지내는 일본인들의 대인기피증 '히키코모리라는 사회적 문제가 된 정신질환을 소재로 삼아 우울한 도시 도쿄를 그만의 유머로 접근해서 그려내고, 이 우울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간절하게 흔들어댄다. 제발 좀 밖으로 나와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나눠! 이렇게 봉준호가 간절하게 말하는 듯하다. 그 때문에 영화 내내 세 영화 중 가장 밀접한 시각으로 도쿄에 다가갔던 시각을 마지막에 감독의 시각을 전면에 드러내며 '지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나는 아오이 유우의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은 영화를 구름 위로 붕 띄워 생동감을 부여한다. 세상 속으로. "ゆれる. (유레루; 흔들린다)" 후반작업시 아오이 유우는 이 한마디를 녹음하기 위해 서울까지 왔다고 한다.
서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만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킨 서울-영화가 필요하다. 서울은 역동적이면서도 우울하고, 거의 모든 전통적 건물들이 파괴되고 못생기고 높은 빌딩이 세워진 이 어울리지 않는 짬뽕 도시가 갖는 복합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그 천박함과 센스없음을 노골적으로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곳이다. 이곳은 방황에 의해 불타버린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 남대분이 공사중인 곳이며 매일매일 시위와 화재가 끊이지 않으며, 재개발과 철거가 수많은 슬픔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어거지로 슬럼을 덮어내려 공사에 공사를 거듭하지만, 수십년간 끊이지 않고 반복되어온 이 공사는 수없이 슬럼을 양산하는 모순적인 건설의 도시, 부유하고 찬란하며 세련되신 소수의 부유층이 몇몇 동네에 몰려살며, 이리저리 투기를 거듭한 나머지 3살짜리 아기는 빈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반면 집이 없어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과 부랑자들이 수없이 늘어나고 있는 이곳! 바로 서울이다. 이처럼 서사가 가득한 도시가 또 어디있겠는가.